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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악화로 울산 지자체들이 일본과의 교류행사를 잇따라 취소하고 있는 가운데, 이참에 실효성 없이 형식만 갖춘 국제교류행사의 당위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울산시의회에서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울산시 차원의 일본 교류를 전면 중단하자는 극단적 제안이 나왔다. 울산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손종학 의원은 울산시에 제출한 서면질문을 통해 "공무수행을 위한 일본과의 교류 사업을 전면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손 의원은 "경제 주권을 지키려는 문재인 정부의 원칙적 대응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싸움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 한일 관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교류를 전면 중단할 용의가 있는 밝혀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교류 중단 시에는 울산시와 울산교육청의 산하 기관·단체뿐 아니라 울산시의 예산을 지원받는 단체까지 상호 방문, 교류 행사 등을 일체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울산시는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일본 지자체와 주기적으로 갖던 교류행사를 잠정 중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울산시는 공식적으로 일본 하기, 니가타, 구마모토 등 3개 도시와 교류하고 있다.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교류행사 취소 조치는 울산시뿐 아니라 울산지역 각 구 군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뤄지고 있다. 울주군은 일본 홋카이도의 체육시설 견학을 취소한 데 이어 우호협력도시인 쓰시마시 이즈하라 축제에도 불참하기로 했다. 울산동구문화원도 한·일 문화교류사업으로 초등학생 13명과 문화원 관계자 6명이 일본 비젠 시(市)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했으며, 중구도 도시재생 벤치마킹을 위한 일본 니가하마시 방문을 취소했다. 이처럼 한일 관계 악화가 양국 지자체 간 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그동안 형식적으로 이뤄져 왔던 교류행사들을 전면 재검토하고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울산도 일제강점기와 여러 가지로 얽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의 산업수도를 위한 밑그림을 일제가 그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울산을 인구 50만 명 규모의 공업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조선축항주식회사 대표 이케다 사다오(池田佐忠)가 울산공단을 만드는 데에 앞장섰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던 박정희 군사정권은 일제가 남긴 개발계획 문서를 입수했다. 그 순간부터 울산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선봉이자 산업수도로 우뚝 섰다. 

그 역사의 고리 때문인지 울산은 유독 일본에서 골수 우익의 본향으로 유명한 도시들과 친선관계를 맺어왔다. 하기시와 구마모토, 그리고 비젠시 등이다. 문제는 이들 도시가 일본의 골수 우익 도시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제대로 알고 우호협력이나 자매결연을 한 것인지조차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울산이 얼마나 도시의 뿌리에 대한 의식이 없는 도시인지는 여러 가지 사실로 증명된다.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친선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과정은 단순한 과거의 연결고리를 소환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도시와 우리 고장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작업부터 시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울산의 우호협력도시나 자매결연 도시는 아무리 따져보고 짚어봐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없어 보인다. 지난 2010년 울산시는 일본 구마모토(熊本)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우호협력의 종잇장에 서명을 하고 광범위한 교류를 다짐했다. 구마모토는 울산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서 퇴각하면서 많은 울산 사람을 끌고 가 지금까지 그곳에 울산마찌(蔚山町)라는 마을이 남아있을 정도다. 

일본의 시골마을 하기시와는 더 놀라운 역사를 가졌다. 울산은 놀랍게도 지난 1968년 이 시골마을과 자매의 연을 맺었다. 울산시와 하기시는 지난 1968년 10월부터 자매도시협정 체결 이후 경제, 스포츠, 문화, 청소년 교류 등 매년 다양한 교류를 해오고 있다. 후지미치 켄지 하기시장은 지난 2016년에 울산을 방문해,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하기는 어떤 곳인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저격한 이토히로부미와 그의 정치적 동지들인 이노우에, 미우라 등 조선 침략의 장본인과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들이 자라고 야욕을 키운 땅이다. 

어디 하기뿐인가. 코무덤으로 유명한 일본의 비젠시도 울산과 친구가 되어 있다. 울산 동구는 지난 2015년 일본 오카야마현 비젠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비젠에는 동구 방어진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들과 그 후손들의 추억이 연결의 고리로 남아 있었다. 문제는 동구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한 비젠시의 역사다. 비젠시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공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오게 한 능욕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제대로 살피고 따져보는 작업 없이 교류를 이어가는 일은 잘못이다. 이번 기회에 일본과의 교류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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