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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연일 혐한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교류중단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은 미래의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역사인식과 왜곡된 인식에 바탕을 둔 양국간의 교류는 이번기회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울산 등 한국 동해안 4개 지역이 참여하면서 20여년간 이어져온 한국-일본 간 대표적 경제교류 행사가 양국 관계악화를 이유로 취소됐다.산업통상자원부와 한일경제협회에 따르면 8월 개최될 예정이었던 '한·일 호쿠리쿠(北陸) 경제교류회의'가 취소돼 올해는 열리지 않게 됐다. 한·일 호쿠리쿠 경제교류회의는 동해안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지자체와 경제인 단체들의 상호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2000년부터 매년 양국을 번갈아 가며 개최해 왔다.

그동안 행사에는 한국 동해안 4개 지역(대구·울산·강원·경북)과 일본 호쿠리쿠(北陸)지방의 3개현(토야마·이시카와·후쿠이)의 지자체, 기업 등이 참여했다. 이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의 중부경제산업국이 공동 주최해왔으며 한일경제협회와 호쿠리쿠 경제연합회가 함께 주관해왔다.

지난해는 일본 후쿠이시에서 개최됐으며 올해는 한국 강원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한일경제인협회 관계자는 "행사 취소의 원인은 복잡한 한·일관계의 문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울산도 일제강점기와 여러 가지로 얽혀 있다.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은 그 도시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의 자존심이다. 도시의 리더, 지식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면 그 도시는 뿌리 없는 도시, 천박한 하류문화가 흐르는 이상한 도시가 돼 버린다.

그 대표적인 사실이 몇 년 전 열린 울산박물관 개관기념 기획전시다. 울산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울산을 담은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특별전을 열었다.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울산 자료 78점을 대여해 전시한 것으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전시였다. 문제는 이 특별전의 바탕이었다.

울산의 과거 기록은 1930년대 울산을 조사한 동경제국대학 조사팀의 조사 자료가 남아 있기에 가능했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이 자료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전리품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이었던 동경제국대는 조선인들의 삶과 문화를 광활하게 수집했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지휘한 주민생활 조사는 울산만이 아니라 전국 주요거점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아래 진행됐다.

조사의 목적은 당연히 식민지로 강제 병합한 조선반도는 물론 조선인들의 골수까지 내선일체화 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이른바 식민지 정책의 3단계 사업으로 조선민족을 철저하게 일본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벌인 제국주의의 야욕이 유산처럼 남았고 그 전리품이 울산사람들에게 아무런 반성 없이 전시됐다. 이런 따위의 기획 전시는 얄팍한 지식과 눈길 끄는 이벤트에 집착하는 관리들의 합작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우호협력을 만들어가는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난 2010년으로 기억한다. 울산시가 일본 구마모토(熊本)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우호협력의 종잇장에 서명을 하고 광범위한 교류를 다짐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서 퇴각하면서 많은 울산 사람을 끌고 간 구마모토는 지금도 울산마찌(蔚山町)라는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다. 그동안 두 도시의 대표들은 '화해'를 이야기 하고 '과거를 뛰어넘는 미래'를 이야기 했다. 왜 뛰어넘어야 하고 왜 화해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고 화해의 전제는 무엇인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끌려간 울산의 선조들이 가토의 발바닥을 닦고 왜놈의 오물을 치우는 종살이로 살았던 동네이름을 가토는 울산마찌로 정해 울타리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좀 더 먼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일본의 시골마을 하기 이야기다. 울산은 놀랍게도 지난 1968년 이 시골마을과 자매의 연을 맺었다. 울산시와 하기시는 지난 1968년 10월부터 자매도시협정 체결 이후 경제, 스포츠, 문화, 청소년 교류 등 매년 다양한 교류를 해오고 있다. 하기는 어떤 곳인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저격한 이토히로부미와 그의 정치적 동지들인 이노우에, 미우라 등 조선 침략의 장본인과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들이 자라고 야욕을 키운 땅이다. 어디 하기 뿐인가. 코무덤으로 유명한 일본의 비젠시도 울산과 친구가 되어 있다. 울산 동구는 지난 2015년 일본 오카야마현 비젠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기회에 이 같은 무분별한 일본 도시들과의 교류는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교류를 한다면 그들의 분명한 역사인식과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슬그머니 우호협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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