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시가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원자력시설 안전 조례'에 대해 지난 8일 재의(再議)를 요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거지면서 조례안 처리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시의회 의결사항에 대해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 1997년 7월 초대 시의회 개원 이후 첫 사례다.

울산시는 '원자력시설 안전 조례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면서 '법령에서 위임하지 않은 국가사무를 조례로 정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았는데, 한마디로 조례 제정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이다.

# 市 "국가사무를 조례로 지정"거부
시의회 행정자치위 소속 손종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같은 당 소속 의원 15명의 찬성 서면을 받아 대표 발의한 이 조례안은 당초부터 법령 위반과 실효성 문제가 지적됐고, 상임위 심사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거론됐지만,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여당 의원들에 의해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가 강행됐다.

손 의원이 애초 조례안 발의를 위해 집행부 의견조회 때에도 '위임되지 않은 국가사무는 조례로 만들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 만큼 국가사무에 해당하는 원자력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조사·검증을 하는 것은 조례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와 함께 국가 보안시설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 업무에 지자체가 관여할 법적 근거가 미약해 조례가 만들어지더라도 실제 적용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쏟아졌었다.
결국 무리한 조례 입법화가 울산시 사상 사상 초유의 '재의요구권' 발동이라는 새 기록을 남기게 된 셈이다.

무리한 자치법규 만들기에 대한 우려는 이미 이번 7대 시의회 들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지난 23년간의 보수당 일색의 시의회를 무너뜨리고 절대 다수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너도나도 조례안 만들기에 뛰어들면서 시의회는 현재 조례안 발의 '풍년'을 맞고 있다.
제7대 시의회 출범 1년을 갓 넘긴 현재까지 의원 발의 조례안은 64건에 달하고 새로 만드는 제정 발의는 무려 40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 6대 같은 기간 20건(제정 14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만큼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성과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리한 조례안 발의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의원들 입법 경쟁 속 부작용도 속출
발의자의 셀프 철회로 결론이 난 '청소년의회 구성 조례안'은 올해 상반기 내내 의회 운영에 발목을 잡았었다.
또 보수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밀려 10개월 째 상임위에 상정조차도 못하고 있는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안'과 '노동인권교육 진흥 조례안'은 여전히 시의회 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치열한 찬반 논란에 사회적 갈등까지 유발한 이들 문제의 조례안 외에도 특정단체나 집단의 이익 옹호 성격의 조례를 비롯해 명분만 앞세운 유명무실한 조례도 눈에 띈다.
한건주의에 사로잡힌 시의원들이 간담회 등을 통해 찬성단체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여론수렴 과정을 떼운 뒤 앞뒤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조례 만들기에 뛰어든 그림자들이다.

# 무분별 조례제정 방지 장치 필요
종전의 시의회와 달리 이번 7대에 들어 유독 조례안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빈발한데 대해 지방자치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에선 무분별한 조례 입법화를 적절하게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일례로 어떤 조례이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선 연평균 1억 원 미만이거나 한시적으로 3억 원 미만의 예산이 투입되는 조례안 발의의 경우 비용추계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러한 예외 규정을 폐지하고 비용추계서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대형 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것과 같이 조례 제정에 따른 기대효과와 부작용 등을 사전 점검해 문제의 조례안 발의를 차단하는 (가칭)'조례 시행 사전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편, 시의회는 재의요구를 받은 조례에 대해 오는 27일 열리는 제207회 임시회 마지막 날인 다음달 9일 제2차 본회의에서 찬반 표결에 붙일 예정이다.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 조례는 시의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할 수 있으며, 시장은 이를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손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정할 문제지만, 대전시에선 같은 조례가 문제가 안됐는데, 원전 안전문제가 심각한 울산시에서 조례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재의결을 요구할 뜻임을 밝혔다.  최성환기자 csh@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