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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위기 상황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인접한 도시 선전에 집결해 유사시 '무력 투입'을 경고하고 나섰다. 선전만에서 다리만 건너면 10분 만에 홍콩 북쪽 지역으로 연결될 정도로 가깝다. 중국 본토 무장 경찰이 아닌 중국군이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이라 향후 홍콩 사태가 격화되면 계엄령 선포 또는 강경 진압 감행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연유로 홍콩이 제2의 천안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홍콩사태의 단초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은 홍콩으로 숨어든 범죄인을 중국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문제가 된 것은 중국 정부가 이를 악용해서 인권운동가나 정적(政敵), 외국인 기업인들을 마음대로 중국 본토로 송환해 정치성이 짙은 자국 법정에 세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부터다.


문제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찾아보면 지난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반환을 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영국과 중국은 홍콩을 반환하며 2047년까지 홍콩에 독립적 사법권을 보장했다. 외교와 재계에서는 이러한 독립적 사법권 보장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하에서 홍콩이 국제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밑바탕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학계, 기업계, 외교계, 법조계에서도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처럼 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행정수반인 람 장관은 지지세력만으로 법안 통과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고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조치는 중국 정부와의 교감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중국 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친중국파(pro-establishment)와 중국과는 상관없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우선시하자는 범민주파(pan-democracy) 사이의 갈등으로 입법회 개최가 연기됐다. 양측은 문제의 인도 법안과 관련해 별도의 청문회 개최를 시도했다. 홍콩 정부는 원래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자에 대해서 중국이 인도 요청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했지만, 두 차례 수정 끝에 법안 적용이 가능한 징역형 기준을 7년 이상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안도 법안 반대파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문제는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한세기 전의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중국은 제1차 아편전쟁(1839~1842년) 결과 1842년 홍콩을 영국에 영구 할양했고, 제2차 아편전쟁(1856~1860년) 이후 카오룬 반도마저 1860년 영국령이 됐다. 홍콩은 자유항구이자 대영제국의 무역 중심으로 무역 거상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지만 홍콩이 영국령이라는 사실은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고 어정쩡한 반환 협정이 결국 오늘의 갈등으로 나타난 셈이다.  편집이사 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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