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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을 무분규로 잠정합의했다. 반가운 일이다. 현대차 노사가 2011년 이후 8년 만에 전해 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이 같은 성과는 노사가 당면한 현실을 고려해 합리적 접점 찾기에 집중했기에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노조는 합법적 파업권을 확보했음에도 자동차 산업 환경의 어려움과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고려해 수 차례 파업을 유보하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투쟁의 선봉에서 습관적으로 파업을 벌였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번 임단협에서 현대차 노사는 경영실적에 연계한 합리적 임금인상 및 성과금 지급에 합의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불확실성 확산 등 대내외 경영환경 리스크에 노사가 공감한 결과로 보인다. 향후 노사가 임금인상과 성과금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더욱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한다면 소모적 갈등과 파업에 대한 우려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지난 7년간 끌어 온 임금체계 개선에 합의하며 통상임금 및 최저임금 관련 노사간 법적 분쟁을 해소하고, 각종 수당 등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 미래지향적 선진 임금체계 구축에 한 걸음 다가간 것도 성과로 볼 수 있다. 격월로 지급했던 상여금 600%를 매월 분할 지급으로 변경하면서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일부 근로자의 최저임금법 위반 논란도  없앴다.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대상 특별고용 일정을 단축하고, 청년실업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문제와 직결된 정년연장,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해고자 복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긍정적인 결과물이다.

아울러 노사가 일본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품 협력사를 돕기 위해 '상생협력을 통한 자동차산업 발전 노사공동 선언문'을 채택하고, 협력사의 안정적 물량 확보와 부품·소재 국산화를 통한 대외 의존도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 한국GM, 현대중공업 노조 등의 파업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고 노동계 맏형다운 의연함과 뚝심을 보여줬다. 실리·합리성향 이경훈 집행부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부문규를 이끌었던 것과 비교해 강성으로 분류되는 현 집행부가 무분규로 잠정합의를 도출한 것은 이례적이라 할 만 하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개의치 않고 강경 투쟁을 벌였던 현대차 노조가 이젠 국민 정서를 이해하고, 관행적 파업을 자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긍정적이며 앞으로의 행보에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노동계 전반의 노동운동 방식은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강경 투쟁 일변도의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투쟁하지 않는 노조에게 어용 꼬리표가 달리는 것이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경험상 파업을 한다고 해서 교섭 결과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노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파업을 통해 추가로 얻어내는 것보다 파업으로 인한 임금 손실이 더 큰 경우도 많다. 성과가 비슷하다면 파업하지 않고 소통과 타협으로 교섭을 마무리 하는 것이 노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혁신적 노동운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이정묵 노조위원장은 상생 시도를 두려워하는 다른 대기업 노조에 "투쟁으로 얻어낸 것만 의미가 있다고 보는 낡은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 심장한 말을 던진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 달 임단협을 마무리한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 하부영 현대차 노조위원장에게 "집행하고 이끌어가는 리더가 노조원들에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물꼬를 터줘야 하는데, 용기를 한 번 내시면 어떨까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통했을까,  하부영 지부장은 올해 임단협을 무분규로 잠정합의했다. 현대차 노조가 앞으로도 무분규에 대한 금단현상 없이 노사상생 기조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8년 만의 무분규 잠정합의가 최종 타결로 이어져 새로운 노사상생의 출발점이 되길 울산시민과 함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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