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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또 지나갔다. 요란한 바람이 불었지만 모두 문을 단단히 잠가 큰바람을 피했다. 개폐장치가 견고할수록 문의 위력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태풍에 걸어 잠가야 하는 문이 아니라 내뱉고 싶을 때마다 걸어 잠그지 못한 입이다. 화생어구다.

중국 당나라 말기를 살았던 풍도는 가장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당이 세력을 다하고 송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오대 시대가 이어졌다. 풍도는 이 다섯 나라의 혼란기에 후당에서 입신하고 뛰어난 처세술로 재상을 지냈다. 그는 무엇보다 입을 조심하는데 삶의 금줄을 쳤다. 감성도 풍부해 문학적 재능이 출중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뽐내지 않고 세상에 발표하는 일도 제한했다. 그런 삶을 산 그가 남긴 절세의 경구가 설시다. 혀에 관한 주문이다.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이 바로 설시의 전문이다. 풀어보면 명쾌하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을 편히 할 수 있다. 중국 정치가들의 책상 위에 부적처럼 걸린 경구다. 

한다, 안 한다, 하면 뭐하노 등등 말만 무수했던 조국 청문회가 끝나자 검찰이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를 불구속기소 했다. 혐의는 사문서위조다. 검찰은 조국 부부가 딸을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보내기 위해 총장상을 맘대로 만들었다고 봤다. 당시 부산대 의전원은 입시요강에 '총장이나 도지사·시장, 장관급 이상으로부터 수상 또 장관급 이상이 인정하는 국가자격증'을 제출하면 우대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요강에 걸맞은 수상이 필요했던 조국의 아내가 자신이 몸담은 동양대에서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검찰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될 후보자 부인을 심야시간에 불구속기소 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검찰의 증거 내용이다. 검찰이 정교수의 혐의에 위조라고 분명히 밝힌 것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반증으로 풀이되는 상황이다. 

전날 동양대 최성해 총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총장은 교육자의 양심까지 전제하며 '난 그런 상을 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청문회에서 조국 후보자는 경북 지역 청소년들의 영어 에세이 첨삭 등 영어 관련해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고, 여당 의원들은 동양대의 상장 및 표창장 형식이 통일되지 않았다면서 최 총장의 명의로 발급된 일련번호가 다른 표창장 여러 장을 제시하며 물타기에 나섰지만 당사자가 안 줬다니 딱한 노릇이 됐다. 여기에다 압력성 통화논란도 이어졌다. 자신의 연구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자 정 교수는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구성해보면 대충 이렇다. 총장님, 표창은 내게 위임한 거로 해 줘요. 조 후보자도 전화를 바꿔 총장에게 저음으로 이야기한다. 총장님, 아내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시죠. 그래야 총장도 좋고 정 교수도 좋은 일 아닙니까. 이 정도의 흐름이 현재까지 진행된 검찰과 조 후보자 사이의 이야기다. 이런 맥락이라면 조 후보자 부부는 위증 교사와 강요, 협박죄가 적용될 수 있고 조 후보자도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사안이 이쯤 되니 사모펀드니 사학비리니 하는 따위는 다 들어가고 이 한 건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문제의 1호 안건이 돼버렸다. 급해진 것은 민주당이다.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 송기헌 의원이 선공에 나섰다. 그는 동양대 최성해 총장을 향해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태극기 부대'에 가시던 분"이라며 "우리한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평소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주당이 편 가르기 발언으로 최 총장을 폄하했다. 당장 자유한국당에서는 최 총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자고 했지만 결사항전으로 저지했다. 곧바로 여권에서 헛발질이 나왔다. 알릴레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시민이 증거인멸 의혹에 휩싸였다. 유시민은 최 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유시민은 녹음 파일 없는 통화 내용이라는 자신감에 "그냥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전화했다"고 해명했지만, 알릴레오에서나 통할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김두관도 통화 사실이 밝혀졌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모든 상황은 태풍이 오기 전의 일이다. 태풍이 지나갔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누가 뭐라든 조국 법무부 장관은 임명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 깃발을 움켜잡을 태세다. 일각에서는 부인이 기소된 마당에 대통령이 임명 강행의 무리수를 두진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은 일심동체이자 분신이다. 여권 핵심인사들이 조국사수대를 자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를 버리고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직언이 필요하지만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조국 = 문재인 정부라는 등식에 스스로 가둬버린 여권은 후회하고 있지만 표정을 드러낼 수도 없다. 그래도 직언하는 젊은 피가 여권에 있으니 다행이다. 박용진과 금태섭은 볼멘소리하지만 댓글부대의 인해전술 앞에서 식겁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결국 위선이 문제다. 조국이 조국에게 무너진 지점에 대통령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도 임명하고 옆자리에 세워두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그 자리는 국민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강남좌파의 신화가 양치기 목동의 거짓말처럼 세 번 외친 꼴이 됐다. 바로 도덕성이다. 지금 과반이 넘는 조국 반대의 여론은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청렴과 정의로 무장했다며 단어마다 댓잎 하나씩 귀걸이를 단 명료한 문장들이 누더기가 됐다는 쓴웃음이다. 조국이 파렴치로 매도했던 적폐들에게 외친 문장이 다름 아닌 자신에게 뱉은 자백이었다. 혀가 꼬이고 스탭이 엉키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웬걸, 사람들은 너무나 빨리 알아챘다. 11시간을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로 버텼는데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강남좌파, 무너진 신화는 법무장관 임명장을 받는 순간 원상회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눈을 부라렸지만 윤 총장의 레이저 안광을 반사시킬 내공이 사라졌다는 게 문제다. 

이번 사태로 촛불내공으로 무장한 여권의 내상도 깊어졌다. 조국 법무를 임명하고 수습에 들어간들 파장이 가라앉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쪽이 여권 핵심부다. 어떻게 세운 문재인 정부인가.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인가. 그는 유아독존이라는 절대무공을 가진 정치인이다. 지난 3년 전 촛불 정국 당시 문재인은 "나는 엄연히 (대선) 1번 주자여서 역사가 역행하지 않도록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흐름을 뒤집지 못하도록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다.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나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외쳤다. 자신이 아닌 어떤 자라도 집권에 성공하려면 "결국 문재인을 죽여야 하는 것"이라는 유아독존 내공의 비문을 주술로 걸었다. 촛불과 한 몸인 그가 장자방 조국으로 인해 이런 시련에 처할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법무장관과 사법개혁, 그리고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꽃길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입이 시작이었고 끝이 됐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그물망에 스스로를 가둔 우리 지식인들은 제대로 된 이념투쟁을 겪어보지 못한 채 한국전쟁을 맞았다. 전쟁은 정치의 종말을 고했다. 이는 곧 신념으로 믿었던 이념을 현실에서 대입해 보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념의 현실적용이나 체계화를 거치지 못한 대립은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경험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정치다. 우리 정치판에서 진보세력은 정치실종 시대에 학습한 투쟁적인 기질에다 30여 년 동안 이어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실전경험을 쌓았다. 그런 진보에게 필요한 대중적 친화력이 바로 강남좌파였고 그 선봉에 조국이 앞머리 결을 쓸어올리며 서 있었다. 그래서 그를 지켜야 한다. 그가 무너지면 문재인 이후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하지만 문제는 부끄러움이다. 촛불을 들고 문재인 정부를 청와대로 이끈 이들이 이번 사태로 느낀 부끄러움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부끄러움의 기운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드러날 것인가를 여권 핵심부는 감으로, 선지적 경험치로 읽고 있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나오는 법, 화생어구(禍生於口)다. 이를 들은 적 있고 한 번쯤 책상 위에 걸어둔 적 있는 여권 인사들은 그래서 숨소리가 거칠고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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