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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라고 집에 온 아이들에게 콩밥을 해주니 "또 콩밥이에요?" 하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객지에서 끼니나 제대로 챙기나 싶어 영양을 고려해 마련한 밥이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해묵은 비책의 말을 꺼내 드니 이내 잠잠해져서 콩밥을 잘 먹고, 후식으로 강낭콩 가루로 속을 넣은 송편도 두엇 집어 든다, 어릴 때라면 좀 더 까탈을 부렸을텐데 나이가 드니 저희 입맛도 순해진 것인지 어미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물론 나도 콩밥을 좋아하진 않는다. 몸에 좋다니 되도록 지어 먹으려는 것이지 어릴 때는 "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하는 엄마의 지청구를 수없이 들으며 겨우 숟가락을 들었다. 시골 농사가 대개 그렇듯 우리도 논농사는 주로 아버지가, 밭농사는 엄마가 지었다. 엄마는 밭에 감자, 옥수수, 고추 등을 심었는데, 그중 콩은 엄마가 유난히 좋아하는 곡식이다. 해마다 밭 크기에 비해 적지 않은 콩을 심어서 어릴 때는 늘 콩에 둘러싸여 지냈다. 논두렁 같은 자투리땅에도 메주콩이나 강낭콩을 알뜰히 심어서 논두렁을 지날 때마다 콩 포기를 피해 다녀야 했다. 

콩은 꽃이 예쁘다. 콩잎이 넓고 무성한 편이라 꽃이 두드러져 보이진 않지만, 나비처럼 생긴 큰 꽃잎 아래 작고 긴 꽃잎이 혀처럼 쏙 내밀고 있는 모양새가 곱살스럽고 귀엽다. 뒤로 잦히듯 활짝 핀 콩꽃 앞에선 왠지 거짓말을 해선 안 될 것 같다. "콩은 강낭콩/ 보랏빛 꽃송이/ 송이송이 울타리에/ 조롱조롱 달렸네" 육학년 때인가, 교과서에 나온 동시인데 울타리에 달렸다니 강낭콩이라기보단 울타리콩을 묘사한 시 같다. '송이송이'와 '조롱조롱'이란 흉내말이  주는 느낌 그대로 콩꽃은 소박하면서도 앙증맞다. 콩꽃이 지고 꼬투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는 바가지에 풋콩을 따와서 까게 하셨다. 아, 이때부터 지겨운 강낭콩 밥의 시작이다. 물론 풋콩은 폭신하고 부드러우며 싱그러운 맛이 난다. 하지만 다 익어 딱딱해진 콩은 좀 다르다. 밤새 물에 불려도 껍질은 질기고 미끄럽고 맛은 퍼석퍼석하다. 

가을이 깊어져 누렁누렁 콩이 익으면 콩 바심을 하였다. 강낭콩이나 동부는 메주콩보다 양이 많지 않아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두고 방안에서 꼬투리를 벗기고, 메주콩은 콩 줄기를 볕에 말렸다가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했다. 도리깨에 맞으면 소리를 내며 깍지가 터지면서 콩들이 와르르 와르르 사방으로 흩어진다. 김용태 시인이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하고 다소 호들갑스럽게 표현한 것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콩알은 떼굴떼굴 굴러가서 추녀 아래 낙숫물 자국에 모이거나 나중엔 섬돌 위 고무신 속에서도 나오곤 하였다.

콩 바심이 끝나면 마른 콩 줄기는 부엌으로 날라서 땔감으로 쓰고, 콩깍지는 겨우내 쌀겨와 볏짚으로 쇠죽을 쑬 때 같이 넣어 끓였다. 엄마가 여물통에 넣어준 콩깍지 죽을 배불리 먹은 누렁소는 외양간에 누워 비스듬히 비치는 햇살 속에서 느리게 되새김질을 했다. 눈을 꿈벅거리며 커다란 혓바닥으로 콧등을 핥았다. 타작이 끝난 콩들은 자루에 넣어 쥐를 피해 서늘한 윗목에 보관했다. 메주콩은 두부도 만들고 메주도 만들고 쓸 데가 많은데, 강낭콩은 오직 하나, 밥을 지을 때 주로 넣어졌다. 거의 날마다 먹는 강낭콩 밥이 얼마나 지겨웠는지, "또 콩밥이야?" 투덜대면 엄마는 "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한 마디로 내 투덜거림을 무위로 돌렸다. 그러면 아까 그 강낭콩 동시를 떠올리며 퍽퍽하고 비릿한 맛을 견뎌냈다. 

나중에 논밭을 팔게 되자 엄마는 심심하다고 집 근처 공터를 빌어 밭을 일구셨다. 그리고 여전히 콩을 심었다. 이젠 메주콩 대신 서리태, 동부, 팥, 녹두 등 여러 종류를 조금씩 심었다. 물론 강낭콩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걸 잘 말려 페트병에 담아 두고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밥에 두어 먹어. 나중에 또 줄게" 하며 두세 통씩 싸주셨다. 엄마가 준 콩으로 밥을 지어주면 "또 콩밥이야?" 아이들은 궁시렁대고 "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나는 어릴 때의 우리 엄마가 되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러 오랜만에 엄마 방에 들렀다. 구석에 세워 둔 페트병이 눈에 띄었다. 강낭콩과 검정콩, 팥이 가득 든 페트병 세 개. 엄마가 삼 년 넘게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으니 그 콩들도 삼 년이 넘었을 거다. 막내딸이 오면 주려고 따로 남겨둔 건가. 아니, 아마 텃밭에 심을 요량으로 잘 말려 보관해둔 종자들인 듯싶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던가. 편찮으신 중에도 튼실한 콩을 골라 따로 넣어둔 것이다. 보관이 잘 된 콩은 통통히 여물어 여전히 정갈하고 단단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밭은 쓸쓸히 비어가고, 땅 주인은 집을 지을 거라며 임대를 거두었다. 이제 이것들을 어디에 심어야 하나. 두 손 가득 콩들을 움켜쥐고 나는 오래도록 망연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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