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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첨은 조일전쟁으로 나라가 도탄에 빠진 광해시대에 교언영색의 처세로 권세를 쥐락펴락했다. 연산조 무오사화를 주도한 할애비의 유전인자를 받은 이이첨은 후궁의 아랫도리에 취해 불면한 선조를 후려치고 궁궐을 손아귀에 넣었다. 상궁과 내통한 혐의가 짙은 선조의 급사는 국과수에 정밀감식을 받기 전에 심장마비로 덮어버리고 왕권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어린 영창을 찜질로 보냈다. 왕실의 누구라도 이이첨의 이글거리는 욕망을 모르진 않았지만 실세였던 광해는 눈을 감아 줬다. 그로부터 이이첨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겉으론 광해의 장자방이요 충신의 반열에 앞자리라는 이이첨이었지만 탐욕과 이중성은 세간의 댓글로 뒤숭숭했다. 그런 그를 광해는 학문의 스승이라는 대제학에 앉혔다. 화가 민심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해남 출신 젊은피 윤선도가 상소를 했다. 유명한 병진소(丙辰疏)다. '화기는 상서를 불러오고 괴기는 혼란을 불러오는 법이다(和氣致祥 乖氣致亂)'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실세를 겨냥한 상소는 젊은피의 고난을 알렸다. 함경도 경원을 시작으로 일흔셋까지 이어진 유배의 역사였다. 19년의 유배가 대부분 임금의 성정을 건드렸다는 게 이유였지만 고산의 상소는 나이와 권좌에 흔들리지 않았다. 조선 500년을 버틴 선비정신의 한 단면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주말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이른바 '데스노트(낙마 리스트)'에 올리지 않은 것을 두고 뒷말이 계속되자 "정의당 결정이 국민적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데스노트는 언론이 정의당에게 씌운 면류관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의당이 '부적격'이라 지목한 장관급 후보자는 전원 낙마했고 그 판단력의 잣대에 언론은 걸개를 걸어줬다. 노란 리본 보다 더 선명한 정의당의 당명과 너무나 근사한 데스노트는 그때부터 심상정의 부적이 됐고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하고 다녔다. 그러던 정의당이 조국 청문회를 전후해 스텝이 꼬였다. 장관 후보자를 따로 불러 속내를 듣고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며칠 뒤 데스노트를 슬쩍 감춘 채 '임명 찬성' 결정을 내리며 사법개혁 적임자라는 명패를 달아줬다. 당장 지지층의 이탈이 시작됐다. '불평등과 불공정의 해소'라는 진보 정당의 핵심 가치에 어긋나는 결정이란 비판이 아팠다.

심상정은 여론의 향배가 정의당까지 위태롭게 하자 입을 열었다. "우리 사회의 특권과 차별에 좌절하고 상처받은 청년들과 당의 일관성 결여를 지적하는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 한 사람의 자격 평가를 넘어서 개혁과 반개혁 대결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정의당은 최종적으로 개혁전선을 선택하게 됐다"며 "현재 조 장관의 문제는 검찰의 손에 맡겨져 있고 저희는 검찰 수사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을 살피는 지지층의 시선을 검찰로 슬쩍 옮겨보려는 좌회전이다.

법무개혁의 적임자로 헌법정신의 감시자로 정의의 파수꾼으로 조국은 장관을 꿰찼다. 요란한 취임식을 꿈꿨지만 플래시가 터지는 시선보다 실속이 필요했다. 취임일성이 사법개혁이었고 한발 나가며 뱉은 말은 헌법정신이었다. 내가 아니면 이 땅의 개혁은 령이 서지 않는다는 외침으로 헌법정신을 무수히 뱉었다. 그리곤 1호, 2호, 3호라는 청와대에서나 들렸던 업무지시 번호표가 매일같이 하달됐다. 알고 보니 그 조치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지키려는 포장술이었다. 장관직을 걸개로 수사 외압과 직권남용을 은폐하지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진영싸움이라는 이념적 프레임과 구태정치 몰이는 일견 통할 듯했다. 사법개혁을 반대하는 적폐정치의 반발이라며 순실잡녀의 망국폐단까지 들먹였지만 오판이었다.

장관 취임 직후 쏟아진 윤석열의 수사라인 배제, 피의 사실 공표 금지, 전국 검사와의 대화는 성큼성큼 거칠 것 없는 무소의 뿔로 포장할 수 있겠지만 추석 연휴 평검사 묘지를 찾아 심각한 표정으로 풀을 뜯는 모습은 오버액션이었다. 아마도 조 장관은 그 무렵, 자신을 둘러싼 임명반대 여론과 가족수사가 몇 가지 에피소드로 잠재워지리라는 시나리오를 썼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검찰이 한발 더 나가면 '개혁 대 저항' 구도에 검찰조직을 쑤셔넣어 적폐 프레임에 가둘 수 있다고 오판했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판이 커졌다. 이제 한 발 더 나가면 벼랑이다. 조국의 말간 얼굴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 윤석열은 쉽게 칼집을 보일 턱이 없다. 상황이 이쯤 되자 조국의 결기도 강도가 세진다. 절대 질 수 없는 한판이다. 모른다, 아니다, 나와 관계없다는 모르쇠 신공이 유통기한을 다해가고 있지만 연장허가가 날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첫 단추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 법이라고 전두환에게 광주를 이야기하며 무수히 손가락질 했지만 정작 자기를 살피진 못했노라 고백할 시점이 마지막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손뼉치고 환호하는 응원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시민, 김두관, 김종민 등과 김제동, 김어준 등 입이 빠른 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김종민 의원은 청문회 발언이 발목을 잡고 있다. 김 의원은 조국 청문회 당시 "표창장 위조가 사실이면 제가 반대한다"고 했고 방송인 김어준은 "조국 딸 논문 문제의 핵심은 논문을 대학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라디오 주파수를 올렸다. 

조국 사수를 외친 인사들의 엇박자는 이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종민 의원을 겨냥, "이제 청문회에서 한 약속을 실천할 차례"라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이제 위조 물증이 나왔으니 존경하는 김 의원께선 조국 사퇴에 앞장서 달라"고 했다. 김종민 의원의 페이스북에도 "표창장 위조 공소장 적시 이제는 청문회에서 하신 말씀 책임지시죠"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김 의원이 올린 게시글 중엔 '조국수호 3인방-김종민·표창원·박주민'이라는 제목의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유튜브 영상을 링크한 것도 있는데, 여기엔 "지록위마(指鹿爲馬) 3인방"이라는 조롱 댓글이 있다. 

뒷구멍으로 온갖 모략을 동원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도덕 불감증이다. 어쩌다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면 큰 선(善)을 위한 사소한 악(惡)이라며 대의를 이야기한다. 사법개혁의 대의이거나 헌법정신 수호가 딱 그 간판 문구다. 법학도 라스콜리니코프가 사회악으로 규정한 전당포 노파를 죽일 때 걸개로 걸었던 문구 역시 절대선의 행위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무서운 편견이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되지만 되풀이되면 결국 믿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가 시작한 거짓의 굴레에 스스로 갇혀버린 상황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혼란이다. 두 달 가까이 계속된 혼란의 시기에 두 번의 태풍이 지나갔고 세상의 흐름도 꼬여가고 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호령하던 미국은 스스로 시정잡배가 되길 자처했고 여기저기서 패악질이나 꼬투리 잡기로 세계 경찰이 아니라 깡패 흉내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곁에 두고 쓰다듬던 볼턴을 내치며 김정은의 연애편지에 화답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베와 트럼프, 시진핑과 푸틴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지도자 조합에 김정은을 중심에 세울 태세다. 어처구니없지만 지금 한반도는 주변을 둘러싼 5명의 지도자 그룹이 하나같이 비정상인 환경이 됐다.  

급기야 견고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떨어졌다.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 2017년 5월 대선 당시 득표율(41%)보다 낮아진 것은 처음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따른 실망감이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추석 이후 지지율 하락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30%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갤럽의 조사 내용이다. 이 조사에서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54%였고, '적절하다'는 36%였다. 지난 17~19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7%다. 3,000명 넘는 대한민국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고 서울대 등 대학생들이 촛불집회로 좌절과 분노를 표출한 데 이어 연합집회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조국 장관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법개혁과 헌법정신 수호만 외칠 것인지 명료한 문장으로 답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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