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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라는 손

김진숙

꽃이 뭔지 바람이 뭔지 예까지 나를 끌고 온
공갈빵 같은 시만 쓰다가 노을 앞에 마주서면
불현듯 혼자된 손이 주머니 속에 숨는다

타인의 더딘 손목을 잡아준 적 없었고
먹장구름 짙은 살결을 어루만져준 적 없었고
결단코 오래 참은 적 없는 나의 불온한 손이여

손과 손 마주 잡아야 기도는 완성되나
왼손이 어제 한 일을 오른손이 반성해야
냉정을 견딜 수 있나 무너지는 저물녘

△ 김진숙 시인: '시조21' 등단 (08) 시집 '미스킴라일락' '눈물이 참 싱겁다' 외,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등 수상.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그냥 허허로웠을까? 마음이 침잠했을까? 시인은 노을이 지는 서녘의 언덕에 섰다. 꽃과 바람이 이끄는 데로 왔다며 순순히 고백하고 있지만 실은 스스로 시를 찾으러 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다 불현듯 혼자된 손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따스한 온기를 찾으러 간 것 또한 결단코 아니다. 주머니 속에 손을 꽂고 저 붉은 노을을 바라보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처럼 주머니 속의 송곳은 분명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즉 여기서 송곳은 시심(詩心)일 것이다. 방금 주머니에 들어간 손(手)과 겸손의 손이 겹친다. 동음이지만 뜻은 전혀 이질적이다.


시인은 결단코 이 상황에서 주춤거릴 필요가 없다. 포착한 두 단어를 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시는 새롭게 전개되고 자신의 겸손하지 못했던 상황을 겹쳐 보아낸다.
'타인의 더딘 손목' '먹장구름 짙은 살결' '오래 참은 적 없었던 자신의 손'의 과오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열거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뜻밖에도 노을 앞에 섰기 때문에 더더욱 진중해진다.


하루의 뜨거웠던 태양이 지는 순간 스스로 몰(沒)의 깊이로 스며들기에 우리들 모두가 또 하루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은 정적의 시간이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무한한 이미지를 생성해 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약(自若) 즉, 자기가 자기로만 돼 있음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럴 때 작가는 무한한 우주로 뻗어간다. 창조주까지 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 속에서 손이 다시 맞잡을 때까지의 의미로 확장된다. 마침내 기도가 완성되고 그 기도는 다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큰 울림의 말씀에 종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성'이다. 종교적으로 '회개'와는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어쨌든 시인의 통찰과 내면의 깊은 곳에서 손은 '겸손'하고 겸허하게 겹쳐져 놓인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살다 보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할수록,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그 마음이 새로워지며 그 감격이 늘어나고 그 경외심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 했다. 제주 바다의 차귀도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일몰 앞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사유의 넓이로 나아가고 있는 시인의 깊은 눈빛이 얼비친다. 겸손의 겸양이 미덥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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