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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출세하고 싶다면 교활하고 잔인하며 변신을 잘해야 한다. 아버지가 벼슬을 못 해서 안달이 난 사람 손들어 봐로 시작하던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알리 영어 선생님의 일침이다. 영어를 알파벳 R로 표기하고 선생님의 성이 이(李)였기에 우리는 그분을 알리로 불렀다. 헤비급 슈퍼스타 알리가 알츠하이머를 앓기 전이었으니 알리도 우리 영어 선생님도 모두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알리 선생님의 벼슬 이야기는 시니컬했다. 벼슬하고 싶어 안달인 어른부터 벼슬에 목숨 건 입시제도의 허상까지 특유의 벼슬 발언으로 세상과 대적하는 눈치였다. 교활하고 잔인하며 변신의 귀재여야 출세한다는 세상은 그래서 두렵다. 딱 요즘 이야기다. 

주말, 또 한 번 두 쪽으로 갈린 대한민국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국 법무장관을 둘러싼 찬반집회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벌어졌다. 사람 동원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 집회였다. 반포대로 중앙선을 기준으로 한쪽은 보수단체, 다른 쪽은 진보단체가 집결했지만 조국 사퇴 측은 2,000여 명, 조국 수호 집회 측은 15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목청만으로도 규모는 일방적이었다. 조국 수호 측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대목이다. 

예상을 했는지 진보의 입 유시민은 목청을 높였다. 창원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향한 언론 보도 양상에 대해 과거 '논두렁 시계' 보도 때와 똑같다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공격받았을 때 발언도 잘 안 하고 주춤하다 일이 생겨버렸다"면서 "조 장관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조국 전쟁'에 참전했다"고 최근 자신의 입바른 소리들에 날개를 달았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대한민국 상황을  '검찰의 난'이라 규정했다. 근거는 부족했고 논리는 궤변이지만 듣는 이들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밝힌 근거는 이렇다. "(검찰이) 조 장관을 넘어 대통령과 맞대결하는 상황까지 왔는데 총과 칼은 안 들었지만 위헌적인 쿠데타나 마찬가지다"면서 "검찰총장이 너무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데 지금 상황을 돌아보고 합리적 판단에 따라, 법에 맞게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검찰권이 법을 넘어섰고 이것은 바로 검찰발 쿠데타라는 비약이다.

사람들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유시민은 자꾸 논두렁 시계를 소환한다. 논두렁 시계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괴롭힌 사건이다. 10년 전인 2009년의 기억을 소환해 보자. 당시 언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회갑 선물로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선물 받았는데, 아내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논두렁 시계 파문 이후 열흘 만에 목숨을 끊었다. 진실의 여부를 떠나 이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픈 과거로 남았다. 시계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거나의 문제, 논두렁에 버렸거나 버리지 않았나에 문제가 아니라 법 없이 살 것만 같은 세상 인심 좋은 아저씨 얼굴의 노 전 대통령을 망신 주기로 논두렁에 처박으려는 의도는 분명했던 사건이었다.

권력이 다른 권력을 몰아내거나 짓뭉개는 데는 망신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다. 전두환이 그랬고 이명박이 그랬다.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은 상상력의 여백까지 동원했다. 어디 그뿐인가. 멀리 가면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조선조 최고의 간신배 임사홍의 최후도 그렇다. 

연산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임사홍이지만 사실 그는 성종의 장자방이요 충신이었다. 임사홍은 1445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짓고 풍채도 빼어났다. 아버지는 임원준으로 좌천성을 지냈고 어머니는 조선의 개국 공신 남재의 후손 남규의 딸이다. 처가 쪽 인맥도 좋아 효령대군 집안을 처가로 병풍을 쳤다. 정규 과거제를 피한 임사홍은 음서로 벼슬길에 올랐지만 기개는 조선 선비의 앞자리였다. 당대의 실세 한명회나 신숙주를 한입에 까고 한명회처럼 세상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호기도 부렸다. 왕에게 간언도 서슴지 않았고 학문의 깊이와 특히 글씨가 뛰어나 엘리트 그룹의 선두 주자로 댓글부대를 몰고 다녔다. 

바로 그 임사홍의 능력을 알아준 이는 성종이었다. 성종은 임사홍의 재주를 아껴 시강관으로 경연에 참석하게 했고, 차세대 리더로 성종의 수첩에 올랐다. 그런 그가 조선 최고의 간신배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자신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았다. 음서로 관직에 오른 출발의 문제부터 입바른 소리로 젊은 시절을 보낸 호기 때문에 훈구세력의 줄서기에 밀렸다는 열등감이 연산조의 채홍사로 변신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연산이 왕좌에서 도망한 뒤 혁명 세력이 첫째 간신으로 지목해 두들겨 죽인 사람이 임사홍인 이유는 그래서 충분했다. 혁명정부가 그에게 씌운 죄는 첫째가 연산의 아랫도리를 관리한 채홍사였고 조선 선비의 최대 망신거리였다.

임사홍 이야기로 흘렀지만 조선조 간신배 이야기는 천일야사만큼이나 풍부한 스토리텔링 자원이다. 조일 전쟁 때 순식간에 한양도성이 왜놈의 발길질에 농락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임사홍과 김안로로 이어지는 간신배들의 수작이 바탕이 됐다. 그래서 역사는 간신배의 입을 경계하라 이르고 외치고 반복한다. 문제는 역사가 아무리 주석까지 달아도 간신배의 유전인자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 사람들은 유난히 색출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색출은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다'는 뜻이다. 주로 수사기관이 범인을 찾아낼 때 쓰는 단어다. 짜장면으로 스텝이 꼬인 민주당이 발본색원을 이야기한다. 피의사실 공표가 망신 주기에 얼마나 유용한가를 잘 알기에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간다. 현직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장자방에 대한 수사는 예상 밖이었다. 총장 하나 잘 골랐다며 연일 석열칭송가를 돌려 부르던 여권 인사들은 그래서 황당해 보인다. 피아 구분이 없는 윤석열판 수사 보드엔 누가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니 두렵고 두려우니 목청이 높아진다. 보름날 개 짖는 소리가 커질수록 달덩이는 크고 환한 법, 백구의 목소리가 커지면 심장 박동 소리도 요란한 법이다. 그러니 이제 단일대오는 명분이 확실하다. 너도 살고 나도 살기 위해 검찰은 적폐가 되어야 한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선두에 섰다. 걸개로 적폐 청산을 걸고 그 앞자리에 흰 글씨로 색출을 갈겼다. 뜬금없는 발언으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설훈이 형용사를 잔뜩 붙여 걸개 한쪽을 휘갈겼다. 제대로 읽으면 '검찰총장이 문제를 저지른 사람을 색출하지 못하면 직을 걸어라'다. 조국의 집을 압수수색 할 때 장관이 현장 지휘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수사 정보를 유출한 사람을 찾아내라고 검찰을 압박하는 장면에서 나온 이야기다.

다시 유시민으로 돌아가 보자. 유시민은 누가 뭐라 해도 이 정부의 숨은 실세다. 살아 있는 권력에 현란한 입을 더한 그가 요즘 화제다. 집권세력은 자신들과 별개의 인물이라고 밀어내지만 세상은 그와 그들을 일심동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그는 요즘 강장제를 잔뜩 섭취한 듯 목소리에 힘이 있다. 그는 최근의 언론 보도를 작심 비판했다. 일련의 보도 행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망신 주기 위해 검찰이 슬쩍 논두렁 시계를 흘린 것처럼 조국을 망신 주려고 검찰이 언론과 내통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친여권인사 진중권은 다른 말을 한다. 진보 논객이라면 맨 앞자리에 서고 싶어 하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조국 사태는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이지, 이념이나 진영으로 나뉘어 벌일 논쟁이 아니다"고 유시민의 뒤통수를 쳤다. 

태풍이 지나가고 또 온다지만 우리 사회는 하루도 빠짐없이 조국 논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다시 촛불로 채워진 거리를 보며 개혁의 적임자를 두들겨 팬다는 주장이 먹혀든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현란한 입은 진실을 가리는 유용한 수단이다. 다만 수사로 가득한 문장을 쫓다 보면 그 입에서 퍼지는 구린내는 미처 맡지 못하는 게 두려울 뿐이다.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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