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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3년, 베이비붐 세대의 막둥이로 태어났다. 베이비붐 세대란 출산율이 높은 시기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955∼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뜻한다. 나를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 부모세대처럼 치욕적인 일제강점기와 비참한 한국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군사정권을 물리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고도의 경제성장 후 몰아친 IMF 경제위기의 피해자, 그리고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바로 베이비붐 세대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우리 또래에 비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대학 졸업 직후에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해외취업을 떠났고, 스페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다. 그 후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 5년간의 스페인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 후 한국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거쳐 지금은 현재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2년 전부터는 혼혈아인 두 딸들의 미래를 위해 가족들을 스페인으로 보냈다. 왜냐하면 스페인어는 국내에서 배울 수 있지만 스페인문화는 현지에서 살지 않으면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떠나지 못한 이유는 언어 능력과 경제적 문제이다. 해외교포 1세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겠지만, 나 역시 스페인어 능력이 그리 유창하지 못하다. 말로 소통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문서로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급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적은 월급의 육체노동 일자리 밖에 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의 여유자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부터 한국에서 외국으로, 그리고 국내에서도 여러 도시를 옮겨 살았고, 대학원과정 5년간은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결혼생활 초기 약 10년간은 가족상봉을 위한 우리 가족들의 스페인 방문과 장인장모의 한국 방문 등으로 경제적 지출이 적지 않았다.


아무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러기 아빠'를 자청한 만큼 내 스스로 결심한 것은 '건전하게 살고, 건강관리 잘 하며,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일상에서 작은 행복,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을 느끼며 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이 주말이나 연휴마다 골프나 해외여행을 떠나면 나는 혼자 주말에 조조영화를 보고 연휴에는 병원에 나와 밀린 업무를 정리하는 것으로 소확행을 느끼곤 했다. 가끔씩은 오랜 친구들인 '미시투어(味視 tour)' 회원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 먹고(味) 재미있는 공연 보는(視) 근교 여행(tour)을 다녀오는 것이 내겐 더할 수 없는 소확행이다.


그런데 올해는 소확행보다 더 큰 행복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통통한 집사람이 살을 빼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불과 몇 개월만에 10㎞ 코스를 완주하고 체중도 5㎏이나 빠졌다고 한다. 사랑스런 큰딸은 스페인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학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대학원에 진학했다. 예쁜 작은딸은 고등학교 전 과정을 10점 만점으로 졸업했고 스페인 최고의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특히, 작은 딸이 고등학교 최우수 졸업생에 주는 포상으로 대학교 1년간 장학금을 받는다고 하니 아빠로서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정도면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이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 모두 현재까지 건강에 문제없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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