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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곳에 두었는데 둔 곳을 몰라 나이를 먹으니 다 잊어버렸어 나중에 나중에 꺼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통 생각이 안 나 어떤 것이었는지 이젠 가물가물해/ 나중에라도 너희들은 꼭꼭 기억해 둬야 해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것이 무엇이었는지'

송진권 시인의 동시집 '어떤 것'의 일부분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이제는 없지만 알고 있다네요. 지나간 어떤 것들이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내 속에 웅크려서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는 것도 안대요. 그냥 지나쳐간 어떤 것을 이 책에 주욱 적어 보았대요. 송아지, 가오리, 담쟁이, 병아리, 쇠뜨기, 액체괴물, 톱……. 어떤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아주 특별한 것이 되기도 했대요.

# 엄청 아주 중요한

우리는 엄청나게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그런 작은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어 그깟 채송화야 밟히면 어떻고 개미들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면 어때 염소 떼가 발을 뭉개고 닭들이 집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 좀 어떠냐고 지금 너무 바쁘다니까

제발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저쪽으로 좀 가 줄래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야 도무지 다른 것엔 신경 쓸 틈이 없다니까 매미가 허물을 못 뚫고 나오는 것 따위나 병아리 한 마리 태어난 건 아무것도 아니야

왜 이래. 그깟 늙은 개 한 마리 죽은 거 가지고 눈물이나 흘리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시간 없다 말야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니까 엄청나게 아주 중요한 일 때문이라니까

'바쁘다 바빠' 사람들이 저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갑니다. 언제나 처럼 그 무엇인, 어떤 것을 향하여 뛰어갑니다. 그것은 머리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발아래 있는 것 같기 하고, 내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밖에 있는 것도 같습니다. 시간의 길 위에 사람들의 중요한 그 어떤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담쟁이

잎사귀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잎 지고 난 뒤에 보니
담장 위를 지나간 고양이
넝쿨에 앉았던 뱁새 떼
답답해서 나온 지렁이며
한숨 쉬며 울고 간 아주머니
말들을 모두 빼곡하게 적어 두었어요
하나도 잊지 않고
또박또박 적어 두었어요
 

아동문학가 권도형
아동문학가 권도형

담벼락의 담쟁이는 그저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담쟁이는 진작 그 어떤 중요한 의미를 또박또박 적어 두었나 봅니다. 그 어떤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건지, 특별한 것인지 나지막이 모두에게 물어봅니다. 그 중요한 것 하나 때문에 어떤 것을 잊고 사는 것, 혹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없나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담쟁이가 적어 놓은 중요한 그 어떤 것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 속에서 멈추어보는 여유는 어떨까요?
 아동문학가 권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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