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부적
  • 울산신문
  • 2019.10.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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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선 수필가

수능일이 코앞에 닥쳤다. 이맘때쯤 예비 수능생이나 그 가족은 공부에 몰두한 만큼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온 신경을 수능 일에 맞춰 놓고 기도를 올리는 심정이리라. 과목별 교사가 전하는 요점은 물론 시험을 먼저 치러 본 선배들의 경험담과 정보까지 온통 수능 생각으로 꽉 차 있을 것이다.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장사하다가 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명문대생들이 기억난다. 작년 이맘때였다. 대입 수험생들의 합격에 대한 간곡한 마음을 돈벌이로 기획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명문대생이 쓰던 필기구와 직접 쓴 응원 편지를 부적 장사인 양 판매하려다 문제가 되어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인터넷 판매 소문이 퍼지자 바로 언론의 총알을 맞았다, 곧바로 판매중단이 되고 사과문을 내기도 했지만, 후폭풍으로 치고받는 말들이 만만찮았다. 입장에 따라 온도 차가 확연히 달랐다. 문제의 당사자들은 사려는 사람이 있는데 못 팔 게 뭐냐고 반박했다. 허벅지 찔러가며 공부해서 남보다 우위에 있는 지식을 이용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최고 지식인을 지향하는 명문대생들이 하는 행위라고 보기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해 옳지 못한 일이라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제아무리 명문대생이 하는 말이라지만 사려는 사람이 있는 물건을 파는 게 어떠냐는 항변을 그대로 소화하기가 거북했다. 원하는 물건을 파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마약이든 고리대금이든 분명히 원하는 사람이 있지만, 엄연히 불법이란 걸 정녕 모른단 말일까.

학력 조장 사회니 어떠니 하지만 모두 부러워서 하는 말들이라고 가벼이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텐데, 최고의 학벌인답게 더 진중할 수는 없었을까 싶어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교내 창업동아리에서 시작된 일이라 해서 더욱더 놀라웠다. 기술개발이며 아이디어를 짜내려다 학력을 상품화하려다 만 셈이었으니. 게다가 판매자의 성적순으로 가격을 매겼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판매계획도 무작위로 선착순으로 상위 등급자의 물건부터 팔고 직접 배송도 한다 했단다. 정말 자신을 대단한 무기로 아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적을 취한다면, 그런 마음으로 쓴 손편지나 필기구를 쓰던 판매자의 인성, 품성 등은 어찌 가늠할까. 그것까지 상품의 가치로 쳐야 옳을 터였다.

학벌이 신앙이 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통탄한 어느 학자의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오직 그 한 곳만 목표로 삼아 주위를 돌아볼 새도 없는 대입 수험생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으로 무당에게 꾀이듯 빠져들게 만든 명문대생들의 생각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 놀라웠다.

자식을 낳기 위해 담 너머 다산한 산모의 팬티를 훔쳐 입었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 지식층을 향해 가는 명문대생들의 잠시 잠깐의 일탈이었다고 하기엔 씁쓸한 일이었다. 국내 최고 명문대의 창업동아리에서 신(新) 부적 장사를 하려 했다니 그야말로 '웃픈'일이었다.

내 지갑 속에도 황금색 부적이 들어 있다. 평소 부적의 힘이나 무술적 기원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지니고 있는 이유는 전해 준 친구의 마음을 사고 있는 까닭이다. 부적에 적힌 알 수 없는 시뻘건 글자의 주술적 힘보다는 늦은 밤 오대산 적멸보궁에 간 이야기며 그날 얻었던 산의 정기와 스님께 얻었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자 한다. 

혹자는 저 명문대생들의 신(新) 부적 장사를 질타하면서 내가 부적을 지닌 것에 반감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친구의 우정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한 증표로 삼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 올곧은 삶의 자세로 더 겸허해 지리라는 기원도 함께 담아서.

곧 치르게 될 수능을 앞둔 예비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한다. 경쟁 사회에서 좁은 관문을 다 함께 통과할 수는 없다. 그만큼의 기원 또한 간절하리란 걸 잘 알기에 그간 가꾸어 온 실력을 후회 없이 펼칠 수 있도록 내가 지닌 황금색 부적에 힘이 있다면 수능생을 위한 응원에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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