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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라는 말은 밥은 동쪽 집에서 먹으며, 잠은 서쪽 집에서 잔다는 말이다. 이 말의 바탕은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가 매파(媒婆·혼인을 중매하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소곤거린 일화에서 표현된 말이다. 동쪽의 부자인 못난 총각 집에서는 밥을 먹고, 서쪽 집의 가난한 인물 좋은 총각 집에서는 잠을 자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큰부리까마귀는 서쪽 산 나뭇가지에서 잠자고 동쪽 도심에서 먹이를 구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출퇴근하는 사람의 생활상과 비슷하게 느껴져 도심으로 출근하는 까마귀라 표현했다. 초가을부터 큰부리까마귀가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간혹 백여 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고공을 통해 도시로 출근하는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잠은 산에서자고 먹이는 도시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식당으로 출근하는 셈이다.  

요즘 까마귀가 이른 아침 도심으로 무리 지어 날아오는 모습이 뚜렷하게 자주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시적으로 직박구리, 밀화부리, 찌르레기, 방울새 등의 조류에서도 나타나는 가을철 현상이다. 그동안 작은 가족 단위의 무리로 활동하던 것이 가을이 되면 한시적 현상으로 무리를 짓게 된다. 요즘도 까마귀의 무리 행동이 계속되어 그 모습이 관찰할 때마다 마치 도심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느껴져서 표현한 말이다. 그 이유는 물론 생존을 위해 진화된 행동이다. 

까마귀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몸빛이 검은 새'다. 까마귀는 까마귀를 중심으로 큰부리까마귀, 까치, 물까치 등으로 분류한다. 생활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까마귀는 큰부리까마귀다. 부리가 큰 까마귀인 '큰부리까마귀'는 부리가 그냥 큰 것이 아니다. 먹이로 인해 진화된 현상이다. 큰부리까마귀의 식성이 잡식성이라 사람의 생활 환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러한 조류 식성생태를 바탕으로 기록된 성경은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어 살렸으며, 삼국유사에는 정월 대보름에 까마귀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세시민속 오기일(烏忌日)을 기록하고 있다. 까마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새지만 고대인이 신으로 섬겼던 태양을 의미한다. 

큰부리까마귀를 '스캐빈저(Scavenger)'라 부른다. 이 말은 '사체처리자'라는 의미다. 자연의 청소부 역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리 구석진 곳에서 주로 발견되는 토사물(吐瀉物·토한 음식물)과 자동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 고라니 등의 사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다. 해 뜨는 시간을 전후에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도심으로 날아든다. 마치 성경을 읽은듯하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군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언6:10-11)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까마귀는 지혜로운 새다. 이솝우화에는 목마른 까마귀가 주전자 속의 적은 물을 먹는 지혜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길 잃은 나그네에게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로 등장시켰다. 동서고금에서 까마귀를 머리가있는 새로 인식했다. 까마귀는 반드시 키 큰 나무의 높은 가지에 숨겨 둥우리를 짓는다. 둥우리 건축도 지혜의 바탕이다. 그래서 둥우리 찾기가 쉽지 않다. 까마귀는 암컷만 알을 품는다. 대신 수컷은 먹이를 물어다 나른다. 암컷은 확 트인 둥우리에서 알을 품으면서 사방을 두루두루 살피는 파수꾼 역할도 병행한다. 까마귀는 독립을 독려하는 대표적 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세기2:24) 하듯 어미는 일정한 육추기간이 지나면 가차없이 독립을 독려한다. 특히 아버지 까마귀의 행동이 거칠게 관찰된다. 큰부리까마귀의 울음소리는 '까욱∼ 까욱∼'하고 크게 운다. 까마귀류는 무엇이든 집요하게 찾는다. 주택가에 생활 쓰레기봉투에 닭 뼈가 있는 봉투는 모두 까마귀가 쪼아 찢어 내용물을 이리저리 흩어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시각과 후각이 발달한 새임을 알 수 있다. 간혹 도심에서 때를 가리지 않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나면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음식물 혹은 동물의 사체 등 먹이를 발견했을 경우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 등 포식자를 발견했을 경우다. 먹이를 발견했을 경우에는 음식물 찌꺼기 혹은 토사물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침나절 까마귀 울음소리가 술집 부근에서 들리는 이유다. 운전 중에 자동차 도로에서 발견되는 까마귀는 십중팔구 로드킬 당한 고라니, 고양이 등 동물의 사체를 발견해 먹이를 알리는 울음을 운다. 또 포식자를 발견했을 경우 동료들에게 조심하라는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큰부리까마귀를 관찰하려면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대여!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출 수 없듯이 산란한 마음 역시 여유가 없다. 분주한 마음은 중요한 것을 잊을 수 있다. 연어가 돌아오고, 떼까마귀가 찾아오는 아름다운 때에 어지러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 속에서 떼까마귀의 군무를 즐기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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