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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의 길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나는 얼른 그 길로 들어가요
동그란 동그란 길을 가다 보니
연분홍 사과꽃이 피었어요
아주 예쁜 꽃이에요
조금 더 길을 가다 보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어요
아주 작은 아기 사과예요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가는 비는 살금살금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주었어요
그런데 큰일 났어요
조금 더 가다 보니
큰바람이 마구마구 사과를 흔들어요
아기 사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어요
아기 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조금 더 동그란 길을 가다 보니
큰바람도 지나고 아기 사과도 많이 자랐어요
이제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엄마가 깎아 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사과의 길'은 김철순 시인의 동시집입니다. 이파리보다 연분홍 꽃을 먼저 피우고 가지마다 동그란 동시가 주렁주렁 달리는 사과나무가 있는 동네에 시인은 살고 있대요.
달님이 동네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춰 줄 수가 없어서 자기랑 꼭 닮은 등을 만들어서 골목마다 하나씩 달아 준 동네, 구구단을 외우는 산비둘기가 살고 꽃과 대화하는 벌과 나비가 사는 동네라네요. 엄마가 깎아 놓은 사과의 길은, 한 편의 동화를 읽은 듯합니다.
아기 사과에서 잘 익은 사과가 되기까지 시련이 있는 것처럼 아이도 자라면서 많은 시련을 통해 어른이 되지요. 사과의 길에서 인생을 봅니다. 우리는 사과의 길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까요? 구불구불한 사과의 길 따라가면 가을 어디쯤 있을까요?

# 냄비

쉿!/조용히 해/저,/두 귀 달린 냄비가/다 듣고 있어//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냄비 속에 집어넣고/펄펄펄/끓일지도 몰라//그럼,/끓인 말이 어떻게/저 창문을 넘어/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저 산을 넘어/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
 

아동문학가 권도형
아동문학가 권도형

사과나무 동네에선 냄비도 두 귀가 있나 봅니다. 냄비가 두 귀로 듣고 말을 펄펄 끓인다니요? 사과나무 동네에선 예쁜 말만 해야 할 것 같아요? 혹 남의 욕을 하면 냄비가 듣고 펄펄 끓일지도 모르잖아요. 앞으로는 냄비만 보면 두 귀가 생각나서 말을 조심할 것 같아요.
시인이 사는 사과나무 동네에 가고 싶은 가을입니다.
 아동문학가 권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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