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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순 작가는 닥종이를 이용해 사실화된 형상을 표현하는 작가다. 주로 동화적인 모티브를 차용하거나 시간의 흐름, 찰나의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동세 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닥종이 작품을 더욱 고차원적으로 승화하고 본인만의 아이덴티티를 담고자 한 연유였다. 

닥종이 작업은 간략한 형상을 종이로 만든 뒤 한지를 한겹 한겹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세부적인 형상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은 구경순 작가의 수행과도 같은 과정이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하나의 작품을 위해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완성된 형상에 이를 수 있다. 차후 물에 적신 색한지를 구겨 말리는 작업을 통해 한지 자체의 부드러운 질감이 극대화되도록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색을 입히는 순서에 들어가게 된다. 

작품 '살풀이'는 한지의 질감과 찰나의 움직임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살풀이는 우리 고유의 민속무용으로 죽은 이의 부정적인 살(기운)을 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살을 풀어내는 무용수 역시 여인으로서의 한을 담아 죽은 이를 추모하고 본인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즉흥적 몸짓의 동작이다. 흰 치마저고리에 흰 수건, 여기에 붉은 고름은 시각적 화룡점정을 이룬다. 더불어 흰 수건이 휘날리는 모습은 마치 사무친 한에 대한 격렬한 몸부림과도 같다. 본 작품은 인간의 의식과 한국문화를 '살풀이'에 담아 그 감정을 이입하고자 했다.

구경순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위해 인체와 동작에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직접 살풀이의 동작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형태나 동세가 극대화되었으며 살을 풀어가는 동작을 오랜 시간 하다 보니 그에 담긴 숭고한 정신성과 본인 내면의 한 마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구경순 作 '살풀이'
구경순 作 '살풀이'

살풀이에 모든 혼을 담아 혼신을 다해 춤을 추며 일정한 동작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즉흥적인 움직임을 끝없이 했다고도 전했다. 이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과정이었다. 실제 한을 온몸으로 느끼며 춤을 추어가는 작업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몹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구 작가에게 있어 '한' 이란 작업을 하며 받았던 창조의 고통과 같다. 끊임없이 창작에 이르러 모든 혼과 마음, 집중력과 노동력을 바쳐 비로소 하나의 작품에 이르는 과정에서 구 작가는 '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이러한 기는 끝내 긍정적인 작용으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한과 혼이 혼연 되어 작품에 스미게 하는 힘이 있다. 실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운이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닥종이 인형이 전통 소재인 한지를 이용한 작품이며 무궁무진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지만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과 여운이 남기도 한다. 그러한 부수적인 감정마저도 그녀의 작품에 녹아 들어가 있다. 늘 작품에 대한 생각과 애정에 세월과 영혼을 담아 깨끗하고 신성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기 때문에 여러 감정들이 스민 것이다.

한국종이공예대전 초대작가이자 해태 크라운제과 닥종이 공모대전 수상 작가인 그녀는 늘 닥종이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그녀가 바라는 세상들을 오늘도 쉼 없이 닥종이로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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