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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서정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시인: 1914년 1월19일 경기 개성~1993년 11월 23일.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시집 '와사등' '기항지' '황혼가' '임진왜란', 동인지 '시인 부락'.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그동안 곁에서 떠들썩하며 지낸 친구가 마침내 국제결혼 한 딸을 만나려고 가듯 가을은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기다리는 승객으로 돌아오긴 해도 그 가을은 아니겠지요. 여기 오래전 가을 하나 책갈피에 끼워놓은 것을 꺼내 봅니다.
밤의 시인 김광균 시인의 가을풍경을 읽어보겠습니다. 시 평론가들이 시평을 한 것에 반해 지금의 기준은 제 나름의 느낌으로 그냥 적어 보겠습니다.
폴란드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은 그 포화를 잊은 채 그냥 높고 푸른 하늘에 혼자 떠 있는 구름은 아마 시인이 느끼는 어떤 허무함이 아닐까요.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지금에서 보면 직선으로 뻗은 길에 양쪽 은행나무 가로수의 가을로 보이는 것은 시가 계속 읽혀지는 무게일까요. 아니면 저의 상반된 좁은 시야일까요.
그림과 시는 무엇이 다를까요. 원근법으로 훤하게 보이는 급행열차가 소리를 내며 달리고, 일그러진 공업 도시의 지붕의 이탈, 도시적인 셀로판지 구름 하나에 그냥 허무로 높은 하늘에다 던지는 돌 하나로 떨어뜨려 깨뜨리고 싶은 스산함은 이국의 하늘에다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가 아닐까요. 시 속에 많은 대비적 표현 즉, 낙엽-지폐, 길-넥타이, 지붕-흰 이빨 등으로 볼 때 원근법의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 '쓸쓸함에 자연은 이리도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가을은, 오늘에도 없으면서 존재하는 또 하나는 혼자 느끼는 황량함이 아닐까요. 2019년 늦가을에.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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