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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연말이면 시내 곳곳에서는 시민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풍경이 연출된다. 멀쩡한 도로를 파헤친 뒤 재포장하거나 각종 관로를 지하에 묻는 공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행태는 매년 지적되는 사안이지만 단 한 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관행은 자치단체가 그해에 남은 예산을 그해 소진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멀쩡한 포장을 뜯고 재포장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도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서로 다른 기관들이 협의 없이 제각각 굴착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같은 문제가 재연되고 있다. 

울산의 경우 지역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도블록 및 도로 정비공사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당 공사의 경우 연말마다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예산 몰아쓰기' 형태가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울산시에 따르면 제1회 추경 도로개설 시비보조 사업으로 총 35억3,6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되며, 총 18개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는 5억9,000만 원을 들여 백양로 보행환경개선사업, 중구 지역 내 하수구 측구 공사를 진행한다. 

남구는 수암동 신선로 보도 재포장, 달동 돋질로 이면도로 재포장, 신정 4동 이면도로 포장, 선정3동·4동·무거동 이면도로 정비, 수암동 224번길 보도블럭 교체 건의, 삼호동·어은로 도로정비, 선암동 대나리 문화회관 인근 도로확장 등 총 12개소가 포함된다. 사업비는 14억4,600만 원이다. 동구는 방어진초등학교 일대 도시계획도로 확장, 일산·전화동 일대 도로정비에 6억 원을, 울주군은 청량 상남 도시계획도로 개설공사, 온양 발리 467-1 일대(소2-106호) 도로개설에 6억 원을 투입한다. 북구도 제1회 추경예산 편성이 끝난 후 10억 원의 시비를 교부받아 도로정비 공사를 진행한다. 

울산시는 시민들의 사통팔달 도로교통 인프라 확충 등 편의를 위해 하는 공사라고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매년 연말이 가까워질 때마다 반복되는 도로 갈아엎기에 역정을 내고 있다. 이들은 이같은 공사가 시민들을 위해 제때 사용되지 못한 세금들을 소진하기 위한 전형적인 '혈세 낭비' 사업이라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남구에 살고 있는 한 시민은 구청에 이와 관련해 강력하게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민원인은 "달동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 일대 도로를 정비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일부 손상된 부분에 대해서만 진행하면 되는데, 시민들의 세금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세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행정기관에서 이렇게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행정기관에서는 어떤 근거로 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매년 진행되는 도보공사로 인해 통행불편, 공사 소음, 교통체증 등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지자체가 시민들의 예산 낭비 지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련 법을 개정해 체계적인 보도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관련 당국에서는  올해 초에 편성된 예산이고, 각 구·군에서 타당성 검사를 거쳐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말에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공사가 아니라고 일축하고 있다. 남구 관계자 또한 "일부 보도블록의 경우 세월이 흘러 미관을 해치는 곳이 많으며, 요철과 단차 등으로 인해 사고 위험이 있는 도로에 대해 진행한 것"이라면서 "시민들의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처방"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나 관련 당국에서 주장하듯 도로가 파손돼 보수공사가 제때 이뤄져야 하는 경우나 상하수도관 교체공사로 도로굴착이 불가피한 경우 등 반드시 필요한 공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공사로 인한 어느 정도의 불편은 시민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반복적으로 연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객관적 이유가 있다고 해도 반복되는 연말공사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각 구·군에서 연말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이같은 공사가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행정 당국이 예산을 연간 단위로 집행하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 남는 예산을 소진하느라 특정 시기에 공사가 집중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 굴착공사의 경우 한번 시행할 때 유관기관이 함께 논의해 재발되지 않도록 사전조치를 철저히 하는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 

도로 공사 전에 관련 기관들이 지하매설물에 대해 공사 여부를 미리 점검히고 계획을 가지고 집행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연말에 집중되는 도로굴착 민원은 줄일 수 있다. 잘못된 행정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고집하거나 서로 협의과정이 복잡하다고 나몰라라 하는 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내년부터는 또다시 도로굴착 공사로 인한 연말 민원이 재발되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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