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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우리나라의 하늘은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답습니다. 새벽녘 운동길, 동살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색감과 실루엣에 나도 모르게 멈칫거리곤 합니다. 낮의 하늘은 또 어떻습니까? 북실북실한 뭉게구름과 알 듯 말 듯 숨겨진 패턴을 찾아보게 만드는 기기묘묘한 구름이 청청한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에 벌어진 입은 다무는 것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해 질 무렵의 풍광 역시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하늘이 부리는 마술에 혹한 저는 그야말로 날마다 감동입니다. 보고자 하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그야말로 공짜 구경인데도 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으니 그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름다움에 혹하게 하는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광고를 찍을 때 실패하지 않는 광고모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미녀와 아기 그리고 강아지와 같은 귀여운 동물입니다. 그래서 3B(Beauty, baby, beast) 라고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하듯 우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관대하고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고 급기야 미소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방에서 열 일하며 제 마음을 물들이고 있는 가을 풍광들과 3B처럼 시각적인 자극으로 마음에 닿는 장면들도 감동이지만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놀라운 아름다움이 또 있습니다. 생뚱맞게도 그것은 우리말입니다. 일기쓰기로 시작된 글쓰기가 수필을 통해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려고 하지만 실상 글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단어의 종류는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詩를 배우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에 빠졌습니다. 한정되고 정형화된 글을 쓰다 우연찮게 만난 詩語들은 그야말로 절로 유레카를 외치게 합니다.


우리말이 주는 아름다움과 의미, 깊이까지 이 충만함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시쳇말이나 신조어,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와 확연하게 다릅니다. '말은 살아있어서 火魔보다 빠르다'라는 이야길 가끔 합니다. 말의 파급력을 내세우지만 그 말 속에 뜻이 있으니 조심히 사용하라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너 참 엉터리네" 라고 무심코 쓰는 말이 엉터리가 무슨 말인지 알고 나면 기가 막힙니다. 싸가지(싹아지)와 같이 엉터리는 놀랍게도 좋은 의미입니다. 엉터리란 글 자체에 완전하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엉터리 없다' 라고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엉터리 없는' '싸가지 없는' 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빨리 빨리가 입에 붙어 있는 세상이라 글자도 그 덕에 토막이 나고 맙니다.

 

영어의 경우, '너 어디 가니?'(Where are you going?)하고 물으면 통상적으로 'I'm going to school' 이라고 주어와 동사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너 어디 가니?' 라는 질문에 그저 '학교요'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변비약'은 '변비해소제'가 옳은 표현이고 '탈모 샴푸'는 '탈모방지 샴푸'로 써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말은 점점 짧아지면서 그 의미가 어처구니없게도 아예 반대가 되곤 합니다.


No 아베, No Japan 을 외치면서도 일본말을 일본말인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민족말살정책의 일환 중 창씨개명과 일본어의 사용이었던 것만 보아도 한 나라의 정체성과 혼이 담겨진 언어의 중요성은 이미 으뜸인 것입니다. 자주 쓰는 엑기스나 무대포, 고수부지는 일본말입니다. 엑기스는 진액으로 무대포는 막무가내로 고수부지는 둔치로 써야 합니다. 시의적으로 맞기에 몇 개의 일본말에 대해 언급했지만, 언어의 기능이 그저 단순한 소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도 언격(言格)이 있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인정받길 원하는 우리는 언격을 통해 인격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거칠게 말하고 아무렇게나 쓴다면 각자의 삶은 글 그대로 폄하될 것이고 섬세하고 풍부한 언어로 삶을 표현해낸다면 우리의 삶은 그보다 아름답게 기록될 것입니다.


삶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관계는 이해와 배려로 기록되고 그 열쇠가 바로 언어가 아닐까 합니다. 대충 말해도 통하는 인간관계로 막을 내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많은 말들이 혀끝에서 떨어질 때 깊이가 있고 배려가 있고 이해가 있는 아름다운 말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현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널려 있고 가끔은 현기증도 납니다. 툭툭 던져내는 해학적 풍자적 얘기를 제외하고라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제대로 한 번 써보면 어떨까요? 우듬지로부터 내려오는 가을이 바닥에 깔려 바스락거리는 이 계절 예쁜 우리말 곱게 적힌 시 한 편 읽어보는 건 또 어떨까요? 그리고 하늘 한 번 바라보면 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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