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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안쪽

정연희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
저물녘 허공의 먹감 빛 천으로 바느질하네
두루마리 천 펼쳐놓고 가사 한 벌 짓고 있네
위에서 아래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마름질하고
판판하게 펼쳐 귀 맞추네
잘 벼린 가윗날 스치자 잘려나가는 먹감 빛 얼룩들
조각조각 흩어지는 기억의 자투리, 때 묻은 가윗밥들
삭발한 머리카락처럼 내 발밑에 수북하네
잘라내도 줄지 않는 내 어둠의 발자취
펼칠수록 줄줄이 풀려 나오네
헌데 이 휑하니 뚫린 허공 무엇으로 다 깁나
꼬리명주나비의 하늘 슬쩍 걷어와
내 죄에 덧대어 시침질하네

△정연희 시인: 충남 홍성 출생. 성신여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호랑거미역사책' '불의 정원'.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겨울 초입 해질 무렵에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날아들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으면 날개조차 너덜너덜 할까? 살아온 것이 힘들었는지 먹을거리도 없는 나비에게 임대하려 지은 비닐하우스가 아닌데 허락도 받지 않고 냅다 날아들었다. 이대로 하우스 안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일까?
꼬리명주나비는 호랑나비 과의 한 종류이다. 애벌레는 쥐방울덩굴을 먹고 자란다. 꼬리명주나비속의 유일종이며 전 세계에서 오로지 극동아시아에만 분포한다.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 고루 분포하지만 개마고원, 백두산 주변, 전라남도 서남 해안 지방과 제주도, 울릉도에는 살지 않는다. 그리고 남해안 섬 가운데서는 진도에만 살고 있다. 1세대는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까지, 2세대는 6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그리고 3세대는 7월 초순에서 8월 하순까지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 날아든 저 나비는 무슨 사유로 찾아 온 것일까? 쥐방울덩굴도 없는 황량한 겨울 비닐하우스 안에 알을 낳은 곳도 없는데 꽃도 없는데 어쩌자고 날아든 것일까? 이 하우스 안에서 월동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걸까? 나비 종에서도 귀하디 귀한 신분인데 누추한 하우스로 찾아왔는데도 쫓아 내려한 마음이 금방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참이나 바라 보다 보니 어둠이 잦아들었고 나비는 어둠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어쩌면 저 꼬리명주나비가 내게 행운이라도 전해주고 싶어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지 저 어둠의 허공을 기워서 찬란한 빛의 하늘을 열어 줄지 모르지. 내가 지은 죄를 모두 시침질해주러 왔을지도 모르지.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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