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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머니의 탯줄을 달고 나오기 바쁘게 교육을 받게 된다. 배꼽시계에 맞춰 어머니의 젖을 먹어야지 살아갈 수 있는 체험적 교육이 가장 먼저일 것이고 타인을 통해 받아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지식적인 교육이 그다음이다. 인생은 곧 교육의 연속이다.

'교육'이라는 말을 풀어놓고 보면 가르쳐서 기른다는 말이다. 씨앗을 심어 놓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새싹을 틔어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잘 자라도록 식물을 기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수 시대에 걸맞게 학교나 여타 기관단체는 물론 마을의 작은 도서관 등에서도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종목도 다양해서 원하는 대로 골라 배울 수 있다. 관심만 가지면 걸음 닿는 곳마다 교육의 장이다. 심지어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댁과의 갈등 해소 교육, 남편과의 사랑법과 자식 교육법 등 하다못해 금전으로 치자면 어마어마한 금액의 가치로 환산된다는 이웃과의 소통 관계까지 교육이 바탕이 된다. 

가끔 참교육을 받는 사람과 교육발만 자랑삼은 사람이 있다는 의구심이 일 때가 있다.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선(先)자는 교육의 궁극적 자세를 그대로 행하려는 사람이고 후(後)자는 교육 발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의 자세는 들뜨지 않고 차분하다. 

반대의 경우는 파르르 끓는 알루미늄 냄비를 닮은 듯 교육을 받기 전이나 그 후나 호들갑스럽기 그지없다. 교육을 받기도 전에 잘못을 가릴 제어장치조차 없는 교육 발부터 자랑한다. 교육의 장에서 열심히 잘 들어야 본인의 것은 물론, 나아가 가족이나 주위에 습득한 교육을 나눠 줄 수 있을 터, 교육을 잘 받기 위해서는 냉철해야 한다. 

강단 위 칠판에, 혹은 지면에 쓰인 글마다 다 교육이라 해서 아는 체하다 가는 낭패이기 십상이다. 교육이란, 편협 되지 않는 예리함으로 걸러 듣고 볼 수 있는 이성이 있어야 한다. 쏟아내는 말과 칠판에 적힌 글이라고 그대로 다 습득함은 우매한 짓이다. 특히 요즘같이 정보 매체가 다양한 때이고 보면 걸러 들을 수 있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때다.

어떤 영업점의 교육을 받는다 치면, 그들은 이익을 위해 고객의 주머니를 열게 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것이다. 예리한 통찰력과 사고를 지녔다면 자신이 비록 그곳에 몸담고 있더라도 좋지 않은 물건을 좋은 물건인 양 고객에게 권하기보다는 올바른 판단으로 제 물건을 사도록 이끌어 인간관계를 잘 이어가는 것이 교육의 효과일 게다. 

백세시대라 일컫는데 거기에 마땅한,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친정어머니는 생전에 늘 말씀하셨다, 어른 되기 쉬운 거 아니라고. 좋다고 망아지 뛰듯 뛰지 말고 싫다고 성난 복어처럼 볼에 바람을 가득 넣고 있어서도 안 된다 했다. 마음을 잘 다스려 감정조절을 할 줄 알아야 어른답다는 말이었다.

'교육'이라는 낱말 꽁무니에 내 마음대로 생뚱맞은 '발' 하나를 붙여 놓고 그 '발'이 사정없이 기웃거리며 설레발을 칠까 염려돼 노파심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만, 교육 발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지혜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지식이 많다 해서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지혜는 곧 그 지식을 적시 적소에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생각에 지혜의 눈을 바로 뜨지 못하면 백날 교육을 받아도 허방 같은 교육 발만 늘어놓게 될까 염려된다.

집안일이든, 사회봉사든,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다. 나는 현재 어떤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이 들수록 어려워지는 것 또한 더 많다. 이미 접한 지 오래된 컴퓨터만 해도 배우고 또 배워도 부족함이 따르는 교육대상이건만 두렵다고 미루기만 하고 있다. 

날씬하기 그지없는 똑똑한 스마트폰 또한 지닌 지 오래지만, 그 작은 화면 속 기능들을 이용하려다 손가락 하나 잘 못 움직여서 원치 않는 곳으로 메시지가 가고 전화를 걸게 되기도 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여타의 사소한 것까지도 교육이 돼야 하니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렇듯 사회 각처에서 교육을 받아 지혜를 더하고자 하는 마음과 달리 섣부른 교육 발로 미련을 떨게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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