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차천(一手遮天) - 황운하의 손바닥은 얼마나 넓은가
일수차천(一手遮天) - 황운하의 손바닥은 얼마나 넓은가
  • 울산신문
  • 승인 2019.12.12 20:05
  • 기사입력 2019.12.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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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사자독해]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울산이 뉴스의 중심이 됐다. 시중에는 울산 생긴 이래 제일 유명해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 정도다. 그 중심에 선 이가 바로 황운하다. 고래고기 사건과 김기현 수사로 유명세를 탄 그가 다시 포탈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수사를 지휘했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해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한다"는 묘한 문장을 남겼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해서 밝힌 발언이다. 황운하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김기현 전 시장을) 그렇게 배려했는데 (김 시장은) 그걸 모른다"며 김 전 시장의 최근 발언을 두고 배은망덕이라고 비틀었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대해서는 "(저는) 오해받지 않으려고 절제된 방법으로 수사했다"며 "수사는 절제된 방법으로 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망나니가 칼춤 추듯이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청와대의 '하명수사' 논란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하명한 사건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황운하 청장의 발언처럼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 전 시장의 측근 수사는 경찰이 배려한 것일까. 최근 모 언론에서는 이와 관련한 객관적인 검증 자료를 내놨다. 연합뉴스 장영은 기자의 분석이다. 장 기자는 황 청장의 발언에 대해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보도를 통해 과거 지역 여론 동향을 소환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측근비리는 비서실 압수수색 이후 공론화됐다. 바로 그 시점이 2018년 3월 16일이다.

지방선거 3개월 전의 일이다. 이날은 김 전 시장이 자유한국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울산시장 재선 도전을 선언하는 날이기도 했다. 김 전 시장과 자유한국당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경찰의 압수수색 등 수사 때문에 선거에서 역풍을 맞았고 '민심을 강도질 당했다'고 주장하며 선거 패배의 직접적인 이유로 꼽고 있다. 김 전 시장 비서실을 경찰이 압수수색하기 한 달여 전인 2018년 2월 2일과 3일 ubc 울산방송이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이뤄진 여론조사를 보면 울산시장 선호도가 김 전 시장이 37.2%로 21.6%인 송 시장보다 15.6%포인트 정도 앞선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경찰 압수수색 이후인 4월 13∼14일 부산일보와 부산M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는 송 시장이 김 전 시장 29.1%보다 12.5%포인트 많은 41.6%를 얻으며 역전했다.

그 뒤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도 김 전 시장은 10∼20%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송 시장을 거의 앞서지 못했다. 물론 경찰 수사 이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가운데도 송 시장이 김 전 시장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 2017년 12월 24∼26일 국제신문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를 보면 송 시장이 48.1%, 김 전 시장이 40.4%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당시 지역 민심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접전 양상이었다가 경찰 수사 이후 판세가 일방적인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민주당 쪽의 분석은 다르다. 여권에서는 "지난 2017년 12월 여론조사부터 송철호 현 시장과 김 전 시장 양자구도 간 지지율에서 김 전 시장은 한 번도 앞선 적이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울산 정당 지지율 흐름도 민주당이 한국당을 큰 폭으로 앞서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이다. 그는 울산청장 부임 직후 당시 지방선거 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송철호 변호사를 사적으로 두 차례 만났다. 그리고 하필 김기현 전 시장이 공천을 받은 날 지역방송의 카메라를 앞세우고 시장 집무실을 뒤지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위법한 일이나 엄중한 비리가 있다면 시기나 장소를 가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압수수색은 유죄입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황 청장이 밝힌 대로 배려했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 조롱하는 발언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황운하 청장은 경찰 경력 내내 독특한 행보를 이어왔다. 가장 최근에는 명퇴신청과 함께 총선출마를 공식화하면서 틈만 나면 정치적 소신을 뱉어내는 '폴리폴리스'라는 새로운 용어의 주인공이 됐다. 경찰대 1기로 동기들 가운데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그는 3년 전 최순실 사건이 터지자 스스로 특검차출을 요구한 이색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경찰대학 교수부장이었다. 당시 황 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내년 연말 계급정년을 앞두고 어쩌면 마지막 보직일 수도 있는 인사를 앞두고 있다"면서 특검 차출을 공개 요청했다.

그는 총경 시절이었던 지난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경찰 측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비판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된 이력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가 징계를 받은 경찰 조직 내의 이단아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검·경 수사권 갈등에 있어 경찰의 줄곧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왔다.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같은 행보가 결국 상부조직에 미운털이 박혀 치안감 승진이 차단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정부 출범과 조국 민정수석의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힘입어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과 그의 승진에 인과관계는 규명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계급정년의 턱걸이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당나라 때 시인 조업은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느낌을 오언절구로 남긴 사람이다. 그는 시황제의 책사였던 이사에 대한 기록을 읽고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남모르는 것을 속여도 잘 안 되는 법인데, 남이 다 아는 것을 속였으니 죽음을 자초한 꼴이네(欺暗尙不然 欺明當自戮/ 기암상불연 기명당자륙), 한 사람의 손으로는,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는 어려운 법이라네(難將一人手 掩得天下目/ 난장일인수 엄득천하목)' 바로 일수차천이다. 손바닥이 붕새의 날개만큼이 된다 한들 세상을 모두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 이사가 궁금해진다. 진시황의 책사로 유명세를 떨친 이사는 고대 중국사에서 모략가로 으뜸인 인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사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출신은 미천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귀인을 만나지 못한 그는 한때 초나라에서 문서를 관장하는 말단 관리 노릇을 했다. 야심만만했던 그는 당시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 쥐가 먹을 것을 훔쳐 먹는 상황을 보며 이런 문장을 남겼다.

<관청의 변소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의 인기척이라도 나면 깜짝 놀라고 겁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또 어느 날인가는 창고에 들어갔는데, 곡식을 먹는 넓은 창고의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았다. '사람의 잘나고 못난 것도 쥐와 다를 바 없으니, 스스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큰 뜻을 펼칠 사람이라면 넓은 창고에 사는 쥐처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처세의 발견이었다. 이 문장을 휘갈긴 이후 이사는 출세지향으로 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여불위와의 만남과 시황제의 총애로 찬란했지만 동문수학한 한비자에 대한 열등감은 치부였다. 법가사상의 대가인 한비자는 제자백가 사이의 아웃사이더였던 이사와 절친이었다. 순자(荀子)의 제자로 이사와 동문수학한 그의 삶은 이사로 인해 비명횡사로 마감했다. 

말더듬이였던 한비자는 생각을 글로 옮겨 리더를 설득했지만 입이 빠른 이사는 글을 적을 동안 세 치 혀로 시황제를 휘둘렀다. 한나라 사람인 비를 존경했던 시황제의 마음을 읽은 이사는 재상이 되자 시황제를 부추겼다. "한비를 얻고 싶다면 한나라를 공격하세요. 그러면 한비가 사신으로 올 것이고 그때 회유하면 될 것입니다" 공격이 시작되자 한나라에서는 예상대로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내어 침공을 막으려고 했고 시황제는 논리정연한 그의 외교술에 넘어갈 듯했다. 그러자 입 빠른 이사는 본색을 드러냈다. "한비자는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고 그의 계책은 결국 한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한비자를 옥에 가두게 하고 독살시켰다. 시황제가 비자의 명문장을 제대로 읽기 전에 이사의 빠른 세 치 혀가 법가의 법통을 비틀어버린 셈이었다. 입이 빠른 자의 세 치 혀는 세상의 시선을 잠시 자신에게 돌릴 순 있다. 문제는 그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결국 세 치 혀일 수는 없는 법. 당나라 시인 조업이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경구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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