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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겨울 날씨만큼이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뜨거워지는 계절이다. 바쁘게 살아오다 연말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빨간 냄비를 보며 이웃에 대한 걱정들이 사회적 관심이 되곤 한다.

한 국가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의 하나가 기부문화이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기부지수'에서 한국은 2012년 45위에서 2018년 60위로 하락했다. GDP 대비 0.77% 수준으로 2.08%인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여유에 비하며 기부민심은 차갑다. 5년 이내 1억 원을 기부하면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자격'을 갖게 된다. 필자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지금도 세비의 일정 부분을 지역 등에 기부해오고 있기에 아너소사이어티 신입 회원이 2016년 422명을 기점으로 올해 196명에 그쳤다는 이야기에 한 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슈킨은 "오 가난이여, 가난이여! 나를 얼마나 더 괴롭히려는 것이냐"며 가난의 고통을 표현한다. 동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이 주는 배고픔의 고통을 겪으며 자란 세대일 것이다. 필자 역시 산골의 매우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우유·신문배달, 과외를 하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유년시절에도 가난을 견디며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분들로부터 받았던 '나눔'이었다.

그렇게 '받았던 나눔'을 '주는 나눔'으로 되갚겠다는 것이 신념이 됐고, 대학시절부터 봉사 활동, 재건학교 건립, 야학 선생님 활동 등을 통해 조금씩 실천해가며 행복을 느꼈다.  
"정치를 왜 합니까?" 아마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것이다. 개개인마다 살아온 삶, 동기가 다르기에 답변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필자의 자서전인 '나눔으로 크는 세상'이라는 에세이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치는 '더 큰 나눔을 위한 길'을 위한 것이다. 정치인생의 시작은 '받았던 나눔'이고, 그 마지막은 '주는 나눔'이 될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발의한 법안이 '나눔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인 것도, 기부 관련 입법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그 이유라고 하겠다.

불교에서 베푸는 것을 보시(布施)라고 한다. 베푼다고 하니 거창하게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인도에서 극빈자들을 지성으로 돌봤던 故 마더 테레사 수녀께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아니고 주는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겨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크고 작음이 아니다. 많고 적음이 아니다. 나눔의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 제일 큰 행복이며 사랑인 것이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의 열기도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간 운영되는 온도탑 눈금이 30.9도로 17개 시·도 중에 가장 낮은 온도를 보이고 있다.

100도를 넘어 펄펄 끓는 빨간 냄비로 사회 곳곳에 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작은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구세군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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