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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이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열린 본사와의 '성파 큰스님이 들려주는 2020 우리의 길' 신년대담에서 "보고 듣는 것을 역설적으로 당겨서 보고 쏘아서 듣는 방법을 생각해볼 시대"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은경기자 usyek@
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이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열린 본사와의 '성파 큰스님이 들려주는 2020 우리의 길' 신년대담에서 "보고 듣는 것을 역설적으로 당겨서 보고 쏘아서 듣는 방법을 생각해볼 시대"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은경기자 usyek@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산사의 시간은 바람 소리가 다르다. 빛이 매듭을 지어 소리로 풀어헤친 시간, 성파 큰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시간이 안개처럼 풀어헤쳐 있었다. 하로전 일주문(一柱門)과 중로전 천왕문, 상로전 불이문을 거쳐 대웅전과 만났다. 여기서 270도를 돌아야 금강계단 입구에 닿는다. 360도가 아닌 미완의 회전이 어떤 의미인지 슬핏 생각하다 휘청, 금강계단에 섰다. 여기서 다시 한 호흡 가다듬어 종무소 돌아 내실 문이 열리자 큰스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삼배로 예를 올리려 했지만 손사래를 쳤다. 나이 들어 절 많이 받으면 안 된단다. 헛헛한 웃음소리 뒤로 30년 세월이 펼쳐졌다.

1990년대 초 어느 봄날, 초년병 기자시절 성파스님을 만났다. 도자대장경 불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애써 찾아보니 스님의 생각은 한결같다. 대장경을 도자로 구워 만든 불사는 장엄했다. 해인사에 대장경 목판경이 있고, 화엄사에 석경이 있다면 서운암에는 도자경이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앞뒤 판에서 일일이 뜬 탁본을 900도의 불로 초벌구이 한 도판에 유약을 발라 다시 1,250도 열로 구워낸 16만 도자대장경은  큰스님이 지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일군 불사다. 큰스님이 불사에 매달린 이유는 호국정신이 뿌리다. 20년을 훌쩍 넘긴 인연을 걸개로 어리석은 세상, 큰스님에게 길을 물으려 찾았노라 첫 질문을 건넸다. 

"유구무언이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산에서 길을 묻나. 산에 있는 나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예전에는 산중의 언어가 경이롭게 보일 때도 있었지. 절집 언어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형이상학적 언어는 설자리가 없으니 산중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아. 신문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데, 요새 거울은 미세먼지 때문에 흐려졌나? 왜 산에 와서 길을 찾는지 모르겠네."

뒤통수를 후려치는 큰스님의 죽비가 우레 같다. 지난번 동안거 결제법어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이야기 했는데 이 말을 풀어주면 어떨지요.

"풀어서 이야기 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답이 없다. 문제는 요즘 사회는 모두가 앞을 다투는 형상인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모두가 귀와 눈으로 발현한다. 눈은 쏘아서 보고 귀는 당겨서 듣는데, 쏘아보고 당겨 들으니 모두들 잘살고 잘보고 잘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다. 동양의 조각과 서양의 조각 작품을 보면 서양의 인물상은 쏘아보는 응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동양의 조각은 당겨서 보는 관조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동양의 인물상에 드러나는 미소를 법열의 미소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모양은 동양의 모양인데 생각은 서양으로 하고 있다. 보고 듣는 것을 역설적으로 당겨서 보고 쏘아서 듣는 방법을 생각해볼 시대다."

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이 본사 김진영 편집국장과 신년 대담을 갖고 있다.
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이 본사 김진영 편집국장과 신년 대담을 갖고 있다.

명쾌하다. 사물 이치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흐름이 물길 같다. 제대로 듣고 제대로 보아야 잘 듣고 잘 보는 법인데 자기 주장만 강한 일방통행이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표출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예전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두고 맹인모상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야. 요즘 사람들은 장님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지."

넘쳐나는 정보가 오히려 해가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는 일이 더 힘든 세상이지 싶어 답을 청했다.

"진리라 하면 그만인데 그게 쉬운 말은 아니야. 세상은 무극인데 이를 현실로 당기는 것이 태극이고 이를 조금 더 인간 쪽으로 당기는 것이 음양이다. 음양은 무엇보다 조화가 중요한데 조화를 모르고 음양만 이야기 하니 극단으로 내몰리는 세상이 된 것이지. 음과 양은 분명히 다르지만 서로 어울려야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법 아닌가. 요즘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 비빔밥에 매력을 느낀다는데 바로 비빔밥 한 그릇에 답이 있는 법이다."

각각의 맛을 잃지 않지만 뽐내지 않고 어울리는 융합의 맛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지향할 답이라는 생활화두로 들렸다. 울산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얼마전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실사로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는데 어떤 작업인지 궁금했다.

"마모되고 훼손되고 사라질 것이라는 데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나. 반구대 암각화를 사람들에게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재현하는 일이지. 경주박물관에 실물 크기의 암각화 도면이 있고 사라진 그림과 선도 현대적 기술로 살려낸 판형이 있어 이를 구해서 실물 그대로의 크기로 만들어 내고 있어. 재료를 옻칠로 작업하는데 천년 이상 보존할 수 있는 것이어서 열심히 하고 있지. 현재 한 60%이상 진척됐으니 올해 말에는 볼 수 있도록 해볼 생각이다"

성파 큰스님에게서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 문제를 듣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큰 스님은 옻칠로 재현하는 암각화 이야기 끝에 보존 문제도 분명하게 밝혔다.

"반구대 암각화는 퇴적암이라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자연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퇴적암은 풍화에 견디기 어렵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더 훼손이 심해졌다. 앞으로 갈수록 훼손의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지금 이야기 하는 물을 빼고 어쩌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오히려 물 속에 있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 자체를 살려내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그 외에 보존 방법으로 뭐라 뭐라 이야기 하는 것들은 다 우스운 소리다."

물 빼고 수위를 조절하라, 수문을 만들어라 사연댐을 폐쇄하라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한 순간 잠재우는 큰스님의 일갈이었다. 큰스님은 평소에 울산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위기의 울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울산은 태화사라는 엄청난 사찰을 가진 도시야. 태화사는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삼한일통을 이룬 호국 사찰이야. 울산이 있었기에 신라 천년의 문화가 있었고 삼국통일 대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만큼 울산은 대단한 도시야. 그래서 울산 사람들은 울산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반구대 암각화라는 엄청난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가 울산이고 태화사 정신이 깃든 도시가 바로 울산이지. 그런 울산이 그 역사를 제대로 보고 듣는다면 어떤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스님은 평소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마음 공부를 강조했다. 마음에 있으면 보이고 들리고 맛을 안다고 했던가. 마음에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리고 먹어도 맛을 모른다.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을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 의심을 품었던 성파. 그 답을 찾기 위해 통도사로 출가한 스님은 불교 수행을 통해 마음 도리를 알게 된다. 특히 불교 전통문화예술 복원을 수행으로 인식한 스님은 서법 도예 산수화 전통제지술과 천연염색 옻칠화 등에 빼어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성파 큰스님은 월하스님을 은사로 1960년 통도사로 출가해 1971년 통도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총무원 사회부장과 교무부장, 통도사 주지와 제5·8·9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고 2018년부터 통도사 방장을 맡고 있다. 불후(不朽)의 대작(大作)인 '16만도자대장경(16萬陶瓷大藏經)'은 대한민국 불교계의 보물이다.   대담: 김진영 울산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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