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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20년이다. 필자에게 2020이라는 숫자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초년병 기자시절 부산에서 호기를 부렸던 젊은 날의 일화다. 당시 부산시가 부산발전연구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첫 프로젝트를 '부산 2020'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내걸었다. 1990년대 초였으니 2020이라는 숫자는 까마득했다. 하루살이 같은 짧은 식견에 사건사고만 쫓던 시절이라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던 청맹과니였다. 그래서 그때는 너무 쉽게 부산발전연구원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언제 올지 모르는 2020을 앞세워 상당한 예산을 들여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일은 뜬구름 잡기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함량이 그 정도였으니 누굴 탓하랴만, 그때의 경험치가 스스로를 단련하는 하나의 계기는 됐다. 바로 그 2020이 오고야 말았다. 2000년이 시작되자 밀레니엄 버그가 요란을 떨더니 불과 20년 만에 AI시대를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만 세월의 속도를 앞지를 것 같았던 기계의 시대는 과속을 하지 않았다. 기계만이 살아남을 것 같았던 21세기는 기계와 인문학이 만나는 융합의 코드로 자리했다.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새해 첫 화두가 쏟아지지만 대체로 올해 울산의 화두는 위기다. 지난 주말 울산상의의 신년 인사회 화두도 위기의 극복이었다. 울산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수히 청진기를 들이대고 심장박동소리를 분석하고 있다. 제조업의 부활이거나 신성장 동력 등 많은 부분에서 우수한 해결책이 쏟아진다. 문제는 울산만이 가질 수 있는 극복의 동력이다. 이 문제는 역시 울산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야 답이 나온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바로 그 정체성이 자신들만의 색깔이고 그 색깔로 뽐을 내 경쟁력의 우위를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위기의 울산에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수도,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였던 울산은 지금 신음 중이다. 중환자실로 옮기기 전에 긴급처방이 필요하다며 많은 이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 도시의 영광을 다시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의지는 충분해 보인다.

한 도시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다. 황성동 바닷가부터 대곡리 평원에 이르기까지 움막 짓고 고래 잡던 사람들이 이 땅의 첫 문화인이었다면 세계 최대의 배를 만들고 대륙을 달리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지금 이 도시의 주역이다. 상상해보자. 역사 이전의 시기에 이 땅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반구대암각화가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스크린이다. 공룡이 한바탕 놀다간 자리에 북방을 돌고 돌아 자리한 인류의 한 뿌리와 바다를 타고넘던 한 뿌리가 만나 새로운 삶의 터를 만들었다. 북방인류와 해양인류의 융합이다. 그 세월을 지낸 이 땅은 북방계와 남방계 문화의 절묘한 조화가 세포번식을 하던 상상력의 심장이었다.

그 바탕이 있었기에 울산은 차별화된 문화권으로 울산만의 문화 유전인자를 만들어 왔다. 역사학계는 이미 울산을 신라문화권과 다른 또 다른 차별화된 문화권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울산의 오래된 역사는 물론, 반구대암각화부터 산업수도의 오늘까지를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1,000년 전 국제무역항인 반구동 항만 유적지와 개운포 유적지가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영광을 이끌었듯 이제 울산은 7,000년을 이어온 인문학을 기둥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오늘의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 놓쳤던 어마어마한 인류의 자산을 똑바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성장은 사람에 의해 이뤄졌다. 처음은 사람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그 사람들의 축적된 문화는 이제 도시의 튼튼한 내공이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울산이 바로 그 변곡점에 와 있다. 부침을 거듭한 울산이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울산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선봉에 위치한 도시다. 7대 광역시이자 환동해의 중심도시지만 현실은 여전히 변방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지 못한 결과다. 그런 탓에 울산은 언제나 변방이었고 대한민국 역사문화 리스트에서도 후순위로 밀리거나 언급조차 안 되는 도시가 됐다. 인재가 없고 인물이 없어 울산의 오늘이 이 정도의 평가절하를 당한다는 이야기는 공염불이다. 문제는 그동안 사람을 만드는 도시를 위해 울산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빙빙 돌리지 말고 정면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울산이 미래로 가는 방향에는 뿌리의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바로 역사다. 울산이 과거 역사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것인가, 문화적 유산을 거기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그래서 중요하다. 울산의 미래와 도시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인재들이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는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울산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자긍심이 높아지면 새로운 인재는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이면 역동성과 창조성은 봄날 죽순처럼 올라오기 마련이다. 4차산업을 이야기하고 융합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이 땅의 웅대한 역사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우리다. 근대화의 기수이거나 산업화의 수도라는 수식어에 매몰돼 우리는 상상력의 문을 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울산의 과거는 신라 1,000년의 모항으로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도시의 문을 연 국제교류의 현장이었다. 역사시대의 울산은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정도로 오래된 문화권이다. 역사 이전의 시대는 한마디로 어마어마하다. 그 바탕을 새롭게 부각하고 널리 알려 매일같이 떠들어대야 한다. 생뚱맞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떠들어 온 세상 사람들이 울산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울산의 미래를 여는 첫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울산을 이야기하면 그 첫째는 무조건 반구대암각화일 수밖에 없다. 반구대암각화는 울산의 뿌리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이동경로가 숨은 인류사의 지도다. 그 엄청난 보물지도가 새겨진 땅이 울산이기에 이 땅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울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자주 이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첫 문장에 황당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끄덕이고 강의를 마칠 때쯤이면 자부심을 느낀다고 토로하곤 한다. 바로 반구대암각화가 가진 마력이다. 벌써 50년 전이지만 지난 1971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성과 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해를 거듭할수록 반구대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보 지정만 하고 뒷짐을 진 문화재청은 적극성이 없었다. 문화재청은 이제부터라도 뼈를 깎는 자세로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그 가치를 제대로 세상에 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울산시는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지난 연말 암각화군이 아닌 반구대암각화 자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반구대암각화를 제대로 알려 인류사의 독보적인 기록물을 전 인류가 공유하고 보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울산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반구대암각화 자체의 보존도 있지만 그 부분을 넘어서 반구대암각화를 기점으로 한 인류사의 확장에 보다 많은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는 사실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함께 문화재 당국은 반구대암각화를 중심에 두고 한민족의 이동경로와 고대 인류사의 재구성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 작업이 제대로 방향을 잡으면 울산은 그야말로 울산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선사문화 1번지로 거듭날 수 있다. 

표절 의혹으로 논란이 됐던 '울산의 노래가 다시 만드는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홍역을 앓았던 울산의 노래는 표절 논란에다 정체성 문제로 이미 폐기처분 된 상태다. 문제의 핵심은  가사내용이 다른 도시의 노랫말과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울산의 어제와 오늘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체반성이다. 울산의 뿌리는 한민족의 이동경로를 탐구하는 작업에서 시작되는 게 옳다. 이제 필자는 올 한 해 동안 지난 10여 년간 현장과 사람들,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울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 여정을 울산탐구로 정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많은 의견 개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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