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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근 현대중공업 새 노조 지부장이 취임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4년 이후 4차례 연속으로 강성 집행부가 들어서게 됐다. 지역에서는 벌써 새 집행부 출범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새 집행부는 출범의 기쁨에 앞서, 전임 집행부가 해결하지 못한 현안부터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 말 잠정 중단된 임금교섭 재개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동종사 최저 수준이라며 검토도 하지 않고 반려한 회사 제시안부터 논의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노조 주장과 달리 회사 제시안을 들여다보면 이미 타결된 동종사의 합의안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웃도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조합원들은 새 집행부에서는 명분 없는 주장을 거두고 설 명절 전 타결을 위해 회사와 이견을 좁히길 바라고 있다. 더구나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물적 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마음회관 불법 점거 등 노조의 불법·폭력 행위에 대한 법적인 판단도 부담이다. 불법 행위에 대한 회사의 대규모 징계 조치와 손해배상 소송도 걸림돌이다. 

법원은 이미 노조가 신청한 임시주총 효력정지 가처분과 항고를 모두 기각, 회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런데도 노조는 임시주총 무효를 위한 본안 소송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물적 분할을 둘러싼 현안과 관련한 법적인 문제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지난해 해결하지 못한 임협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돌이켜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에는 다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도 가입했다. 이 기간 극심한 일감부족 등에 따른 경영위기로 회사는 희망퇴직에 기숙사까지 매각하는 등 고강도 경영개선에 나섰고, 노조는 극한 투쟁으로 맞섰다. 단체교섭은 4년 연속 해를 넘기며 울산지역 경제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런데도 노조는 경영실적과 사업 성격이 다른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중공업지주 등 4개사가 교섭을 함께 타결해야 하는 이른바 '4사1노조'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조경근 지부장은 '그룹사 공동교섭'도 내걸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계열사 노조와 공동 교섭단을 꾸려 그룹사 전체와 교섭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4사 1노조'에 대한 무용론(無用論)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 3사 공동교섭까지 추진한다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투쟁 일변도의 노선에 대한 조합원의 피로감과 일방적인 조합비 인상 등에 대한 반감은 지난해 집행부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년 전 선거와 비교하면, 강성과 실리 성향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절반가량 크게 줄었고, 실리 성향의 후보는 40%가 넘는 조합원의 지지를 받았다. 연초부터 중동 불안으로 조선업황 회복 지연 우려가 높은 가운데 국내외 경쟁자들의 추격이 가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은 노사가 힘을 모아 빅3 중 유일하게 연간 수주 목표를 90% 이상 달성했다.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직접 선사를 찾아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공정을 지켜 납기 안에 인도하는 게 중요한 조선업 특성상 노사관계가 불안정한 회사에 선박을 발주할 선사는 없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내 1·2위 조선소 합병을 공식 승인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일본의 기술력을 하나로 모으는 시도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현대중공업 노사가 구태를 반복할 시간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당선된 현대차 노조 지부장의 발언이 새삼 반가운 이유다. 그는 "이제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조가 먼저 나설 것이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 노조의 선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현대차가 무엇보다 실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노조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투쟁에서 벗어나 처우 개선 등 노조원들의 실질적인 복리와 회사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현장의 주문을 읽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노조의 강경투쟁이 사측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손해라는 노조원들의 폭넓은 공감대가 깔려 있는 셈이다. 현대차 노조 지부장이 취임 일성으로 "무분별한 '뻥 파업' 없이 2개월 안에 교섭을 타결하겠다"며 귀족 노동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 것이야말로 이런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었다고 봐야 한다

울산이 위기 상황이다. 이 시점에 지역사회는 울산을 대표하는 수출기업 현대중공업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살아야 지역 경제도 살아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글로벌 환경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것인지, 반복된 투쟁으로 시간만 흘려보낼 것인지 기로에 섰다. 결국, 현대중공업 새 노조의 출범에 따른 우려를 기대로 바꾸는 것은 오직 조경근 지부장의 합리적인 리더십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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