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밤
연변의 밤
  • 울산신문
  • 승인 2020.01.09 23:00
  • 기사입력 2020.01.09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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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곤궁한 삶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나마 문학에 힘을 기대어 풀뿌리 같은 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내겐 그렇게 보였다. 이미 한 시대를 거슬러 살고 있는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들의 세대가 떠나고 남은 이들은 이국땅에서 발붙이고 살기 위해 나름대로 바지런하다. 길거리에 매달린 간판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한글과 한자의 비중이 조선족의 인구 밀도가 줄어들면서 덩달아 한글 사이즈도 축소되고 있었다. 다행히 어디를 가든 대부분 우리말이 통했다. 

유독 애원조로 말하는 조선족 가이드의 말이 가슴 저민다. 연민이라는 말은 조심스럽다. 연민의 방향이나 동기야 다양하겠지만 함부로 동정하는 것은 삼가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를 바라보는 연변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부모들의 세대부터 오래전부터 정착하여 살고 있는 땅에서 젊은 후손들은 궁핍한 주거지를 떠나 궁여지책으로 주로 한국에서 동포라는 이름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이들은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노년층들이다. 또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내디뎌 그 땅에 발붙이고 사는 조선족이 줄어든다면 다음으로 닥쳐올 일들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변 땅 한 평사기 프로젝트를 벌이자고 했다. 가능하지 않은 꿈같은 일이지만 우리 국민 한 명, 한 명이 십시일반 땅 한 평씩을 산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조선족들의 입지도 예전 같지 않고 줄어들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고 지역에는 상가건물 간판에 적힌 글자 사이즈가 똑같거나 한글이 한자보다 앞이나 위쪽에 적혀 있었다. 그나마 조선족이 아직까지 연변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조선족 인구밀도가 떨어지는 곳으로 이동할수록 상호의 한글 사이즈는 줄어들거나 아예 한자로만 적힌 부분이 많았다. 그나마 자존심을 지켜주던 한글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연변 어디를 가든 우리말이 기행 내내 편안했다. 동시에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오리의 물바퀴처럼 부단히 애쓰며 살아온 흔적 같았다. 청산리대첩 접전 지역에서 귀 닫고 살며, 현지에서 현지어와 담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단다.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고독한 삶들이다.

두만강 뗏목을 탔다. 좁은 강폭에 그나마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서 뗏목을 탈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뗏목 키를 조정하던 분은 우리말이 유창했다. 북한과 접경지역이라 위험하고 불안할 것 같은 선입견은 그의 입담에 스르르 녹아버렸다. 물살이 거센 상류로 오르자 물보라가 쳤다. 사진을 찍으려고 뗏목을 이어서 덧댄 쪽으로 가자 위험하다며 악어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북쪽에는 북한 악어, 중국 쪽에는 중국악어가 있다면서 조심하란다. 되돌아오는 길에 악어를 보았냐고 끝까지 웃음을 주었다. 

누군가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누구랄 것도 없이 나직이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불렀다.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아버지가 약주가 한 잔 되면 혼자 부르던 노래다. 목청이 좋았는데도 자주는 아니지만 콧노래처럼 불렀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18번이다. 당신과 긴 시간 같이하진 못했지만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중의 하나다. 살아계셨으면 당신이 자주 부르던 눈물 젖은 두만강에 다녀왔다고 턱밑에 앉아 조잘거렸을 텐데, 그랬으면 나도 아버지 곁에 한 뼘은 더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거리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무릎 정도의 물 높이인 강을 건너면 되는 것을 우리가 물리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리라. 연변과 한국은 결코 먼 거리가 아닌데도 그들은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조상들이 살았던 그 터전에서 살고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강물처럼 희석되며 흘러가고 있었다. 기행을 하는 동안 정리되지 않는 어수선한 마음이었다.

북한 가수의 노래와 우리들의 짧은 춤이 어우러지면서 다시 못 올 그 시간들은 연변의 밤을 끌고 갔다. 칠순, 팔순의 연배 시인들은 나름의 화려한 약력과 건재한 집필을 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 작가로서의 급여를 받고 있는 그분들이지만 외로운 이국의 땅에 시 한 줄, 한 줄 꿰어 연변 땅에 조선족의 터전이 더 풍요로워진다면 좋으련만 밤이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짧은 흔적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가도 그 잠깐의 즐거웠던 찰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또다시 돌아간다. 우리가 살던 곳으로, 여명이 반갑지 않을 것 같다. 그분들이 그곳에 나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이 외진 밤이 더 오래됐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헤어짐은 밤이 좋을 것 같다. 연변의 어둠만큼 밤이 더 깊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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