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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정부의 일방적인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 8일 울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번 회의에서 정국 시도의회 의장들은 지역현안 해결 방안과 자치분권 실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황세영 울산시의장이 제출한 공공인프라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선 건의안'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조사, 평가함으로써 신규투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지난 1999년부터 도입됐으며 실시 대상은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국비 300억 원 이상)의 건설, 정보화,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이다. 그러나, 인구가 적은 지방은 경제성이 낮아 예타를 통과하지 못 하는 일이 반복될 뿐 아니라 예타 대응에 과도한 시간 소요로 행정력 낭비 사례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황 의장은 제도 개선을 위해 공공공인프라 사업에 대한 예타 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예타 대상사업 기준 확대(사업규모 500억 원→1,000억 원)를 건의했다. 황 의장은 "대규모 지역 숙원사업의 추진이 절박한 지방에서는 '예타면제'를 통한 사업추진에 목을 매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예산규모에 맞춰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다 보니 꼭 필요한 사업이 반영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 숙원사업은 상대적으로 배점이 높은 경제성 분석 비중을 낮추고 지역 균형발전 배점은 높여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인프라를 지방에 확대하여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울산시의회의 이번 제안은 그동안 울산시가 추진했던 각종 시업의 예타 실패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울산시가 공들여왔던 산업기술박물관이 또다시 무산되고, 수소진흥원 유치도 관련 법 개정으로 사실상 무산되면서 울산시가 새로운 유치 전략 수립에 나서는 등 고심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울산시는 지난 2017년 무산됐던 국립산업기술박물관 유치를 재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9월,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협의 과정을 거쳐 사업비 일부를 울산시가 부담하고 명칭도 국립이나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빠진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이라는 명칭으로 변경, 기재부에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을 신청했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한 부담과 사업비 1,000억 원 이상의 시설에 대한 사업채택률이 높지 않은 최근의 흐름을 반영해 이번만큼은 사업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울산시의 절실함이 담긴 추진안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있었던 기재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심의 결과에서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울산시는 울산대공원 내(남구 신정동 산 195-12번지 일원) 부지 3만㎡, 건축 연면적 1만6,000㎡, 국비 774억 원 시비 219억 원 등 총 993억 원을 투입해 전시관과 산업기술 체험시설, 교육시설을 갖춘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 유치를 추진해왔다. 울산시가 2013년 처음 계획했던 산업기술박물관에 비해 규모나 사업비가 10배가량 축소된 것이었지만 이번에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라는 1차 관문을 넘지 못했다. 

기재부는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를 △기존 직업체험관이나 기업홍보관, 박물관 등에서 유사한 시설이 운영 중에 있어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 건립의 시급성이 부족하며, △전시물 수집방안 등 복합문화공간 운영계획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울산시는 "그동안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의 규모나 성격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 박물관의 성격도 기존의 유물전시 중심에서 벗어나 울산지역 건설이나 화학·조선분야의 각종 유물이나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산업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산업기술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면서 "보존과 보호가 시급한 국내 산업의 역사가 사라져 가고 있는 지경에 있는데도 사업의 시급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업의 효과성 및 완성도 제고를 위해 추진계획을 보완 수정하는 한편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충북의 미래해양과학관 등 유사사례를 분석하고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 유치를 재추진하기로 하고 2/4분기 안에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을 재신청할 계획이다. 특히 시는 송철호 시장의 핵심공약으로 추진해온 '국립 체험형 미래과학관'과 연계해 과학관과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의 클러스터화를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역의 사정이나 사업의 의미와 상징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전편일률적으로 예비타당성 문제를 고집한다면 지역 균형발전의 미래는 없다. 지역에 대한 투자는 지역의 특성과 위상을 고려한 보편타당한 개별적 기준이 필요하다. 중앙의 시각으로 무조건 법의 잣대만 들이대는 사업추진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정부의 확실한 개선책 마련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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