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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제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만 19세이던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시민들의 정치참여와 정치적 의사 표현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정치적 이벤트이다. 만 18세로의 참정권 확대는 선거권자의 증가라는 의미를 넘어 민주시민이라는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의 일부도 일원이 되어 이 중요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만 18세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면서 일부에서는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우려한다. 만 18세는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단계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선거권 행사가 아닌,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의 영향에 쉽게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나아가 '교실의 정치화' 가능성을 거론한다. 교사에 의한 '정치적 편향성'이 선거에 영향을 끼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법은 개정되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소모적인 논쟁보다 새로운 미래 세대가 당당하게 유권자로 참여하는 건전한 민주정치의 장을 조성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에서 어떤 변화와 적절한 교육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발전적인 민주 사회를 이룩할 수 있도록 훌륭한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둔 교육), 그 중에서도 주권의식 함양 및 민주정치 발전과 관련된 교육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사 지인들에게 선거연령 하향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물어봤을 때, 대다수가 "아직 다수의 학생들은 선거 연령 하향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는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쟁위주의 입시교육 속에서 교과수업 및 그 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학생들을 관리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벅차고 교사로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교사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가정 및 사회 안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할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실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노력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교사들은 자신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교육적 원리를 견지해야 한다.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거의 4대 원칙이나 선거 제도에 대한 단편적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닌 실제 선거에서 유권자로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익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민주사회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접하고 자신만의 관점이나 사고를 형성하여 합리적인 유권자의 의식, 태도, 역량을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또한 교사들과 발맞추어 '새내기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확대해 나가려 한다. 2013년부터 일선학교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새내기 유권자 민주시민 교육과정'을 넓히고 참정권의 중요성과 선거 절차 등의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보급할 계획이다. 또한 일부 학생들의 선거운동도 가능하고 정당 가입도 가능해진 만큼 학교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 위반 사항들을 검토해 안내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내기 유권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책임감을 갖고 권리와 의무를 다 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특히 포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플랫폼에 쉽게 노출되며, 글자보다는 영상에, TV보다는 유튜브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한 새로운 세대)인 만큼 가짜뉴스에 속지 않도록 특히 더 주의를 요한다.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줄 알고 어느 한쪽에 현혹되지 않는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을 꼼꼼히 살피고 후보자 TV토론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하자. 스스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투표권 행사에 자긍심을 갖길 당부한다.

한 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화 '스윙보트(Swing Vote)'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계의 모든 위대한 문명은 같은 길을 따라왔습니다.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자유와 번영, 무관심과 속박 중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할지 2020년 4월 15일 실시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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