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신문
  • 2020.01.16 20:04
  •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영숙 수필가

밥은 생존의 근간을 이루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이 진리 앞에 우리는 한 없이 나약해지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한다. 밥을 벌기 위해 누구는 도둑질을 하고 누구는 연기를 한다. 배고파 우는 아이의 분유 값을 얻기 위해 절도를 했다거나 배가 고파 감옥으로 가려고 일부러 도둑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직하다. 

몇 년 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중앙사원을 둘러본 후 해자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아이를 가로로 안은 맨발의 여인이 울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달렸다. 어미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아이의 팔다리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콧물로 범벅이었고 알 수 없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해자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울었다. 뒤 이어 한 여인이 따라오더니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설움에 겨운 듯 더 깊게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가 요동 쳤다.

돈이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모른 척하라는 인솔자의 말이 생각났지만 자꾸 그녀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때에 전 너저분한 옷차림으로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지만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배낭에 있던 물을 건넸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울기만 했다.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인솔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밥을 구하는 방법일 뿐이라며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의 말이 미심쩍어 내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자 관광객의 주머니를 열기 위한 연기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통곡하는 그녀가 마뜩지 않았던 것인지 인솔자의 말에는 약간의 비난과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 모자의 연기는 박수를 받을 만큼 완벽했다. 강울음을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황망한 듯, 다급한 듯 울어대는 그녀와 어미가 움직이는 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었다. 잠시 아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 모자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관심의 눈길을 거두고 싸늘해진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흐느낌을 뒤로한 채 일행을 향해 걷는 속내가 씁쓰레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물을 늘리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도 언죽번죽 고개를 쳐들고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자신과 아이의 밥을 얻기 위해 타인의 동정심을 유발하려 한 것이 과연 그토록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가. 가진 자들의 철면피한 모습에 그녀의 추레한 연기를 비교한다면 어떤 것이 더 지탄받아야 할 일일까. 혹여 힘없고 나약한 저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뻔뻔스럽게 남을 속이고도 오히려 당당한 사람들의 거만한 모습과 밥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내 안에서 대립했다. 돈을 주면 안 된다고 만류하던 인솔자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내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 역시 그녀와 아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흘깃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에 속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듯이 살천스레 외면하고 지나가는 내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내 지갑 속의 달러가 아까웠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윤똑똑이 같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리를 한참 건너다가 돌아보았을 때까지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울고 있었다. 지갑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통역은 돈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거지행세를 계속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정말 돈이 주고 싶다면 1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관광객들 주위에 몰려들어 구걸을 하며 '원 달러'를 외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마 그녀에게 1달러를 줄 수가 없었다. 그녀와 아이의 연기에 속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폐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돈을 받아 든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머리를 크게 조아리며 또 말을 했다. 뒤를 따라 온 인솔자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했다. 구걸을 하는 그녀에게 낯선 이방인이 준 10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다 해져 너덜거렸지만 그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신의 가호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겸연쩍은 듯이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그녀의 눈빛이 선해 보였다. 

나는 누군가가 무임승차하려는 것을 모른 척 눈감아 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자신의 밥을 위해 남의 밥을 공짜로 탐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칠 만큼 날을 세운다. 그럼에도 어린 아이까지 동원해 온갖 궁상을 다 떠는 그녀가 비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 준 것은 값싼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옳지 못한 밥을 태연자약하게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관대한 세상을 향한 나만의 항변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삶이 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해서 밥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떳떳하고 정당한 밥, 타인의 밥이 아닌 나의 밥을 먹으며 사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밥을 얻기 위해 이른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의 당당한 밥 한 그릇을 얻기 위해서.

로그인을 하면 편집 로그가 나타납니다. 로그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회원 / 비회원 )
울산신문은 여러분의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는 댓글. 도배성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은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