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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에 움츠려지는 몸과 함께 팍팍한 경제상황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삭막해진 현실이 걱정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도리는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는데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가 작금의 시대는  왜 이다지도 힘이 드는지 갑갑하기만하다.

옛날 옛적에는 '나물 먹고 물마시니 대장부 살림 이만하면 되었다'고하던 시절이 그 언제이고, 군주가 백성을 다스림에 성군의 기준이 '함포고복'하는 것이라 하여 하루 세끼 배불리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는 것이라 했다.

언제쯤이나 마음 편히 하루 세끼 걱정없을 날이 올지 기약이 없어 보인다.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가진 능력을 다 해도 힘든 판에 우리의 위정자들은 오로지 자기 정당들만의 이익과 의석수 확보를 위해 진보가 잘 났니 보수가 못 났니 하며 서로 물고 뜯더니,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좌파니 우파니 하여 온갖 프레임을 들이대어 나라를 아귀다툼의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이 현실이 암울할 뿐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는 가장으로 또는 사회인으로서 너무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었고, 지성과 도덕적으로 존경받던 이들이 정치판에만 엮이면 마치 남의 피 없이 못살아가는 흡혈귀나 좀비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흡혈귀나 좀비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잠재되어있던  악의 본성이 드러나는 불치병이라 강력한 치료제가 필요하다. 우리 위정자들에게 골수에 새겨져서 만연되어 있는 좌우로 편 가르는 이념의 불치병은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예전의 왕은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임금이 고기와 술을 금하고 돗자리를 깔고 머리를 풀고 하늘에 고하여 왕의 부덕이니 자신을 벌하고 백성에게 비를 내려달라는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이라도 있었다. 이때는 조정의 문무백관도 동인, 서인이니 남인, 북인이니 하는 당파와 당색에 구분 없이 한마음으로 위민하는 마음이었다.

백성들의 살림을 넉넉히 해놓고 난 연후에야 당파 싸움을 하든 좌우 이념의 편 가르기를 하든 하시라.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어찌 이다지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질 정도의 자질도 없는가? 왕이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올리는 만무하나, 왕의 기우제가 갖는 의미는 백성의 고달픔을 왕도 알고 함께하니 부디 이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일 것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그 흔한 희망의 메시지도 주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단 말인가?

이렇듯 나라가 어려울 때 당파와 이념을 아우를 정도의 정치적으로 큰 인물이 나타나 화합의 메시지를 내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계에는 그 만한 큰 인물이 없는듯하다. 또 한 번 더 옛날 애기를 빌어보자면, 나라가 위정자들의 실정으로 정도를 걷지 않아 어려워 질 땐 정치권 밖 재야에 묻혀 학문에 증진하였던 수많은 선비들이 뜻을 모아 상소하고 간하여 올바른 길을 제시하였고 이를 제도화하여 받아들였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재야의 지식인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네편 내편, 진보 보수가  기준이 아니라 도덕과 양심에 근거한 이성적 지성인들의 몫이 크다 할 것이다. 지식인들의 소신 있는 발언이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배신의 낙인을 찍어 돌팔매질을 당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돌아올 불이익의 두려움에 침묵하여 나라가 망하기를 기다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배운 자가 국민과 나라에 진 빛을 탕감하는 것이라 여겨야한다. 국방, 납세, 교육, 근로 등 4대 의무를 넘어서 이는 식자들이 스스로 가져야 할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의무일 것이다. 바로 가진 자가 봉사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의 덕목일 것이다ㆍ

요즘 좌파 우파의 극단의 행보에 식상하던 국민들이 신선한 인물의 등장에 답답한 가슴 쓸어내리며 환호하고 앞날에 희망을 가져 본다. 진보는 배신이라 비난하고, 보수는 양심이라 칭찬하고 진보는 옳고 그름을 넘어서 자기들 편 같았는데 옳은 소리만하니 배신이라 할 만하지만, 한때 적이라 욕하든 보수가 마치 자기편이라도 되는 양 거드는 모양새도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아 보인다.

그 사람들의 행보에 대한 어설픈 보수의 칭찬은 오히려 그들 본래의 뜻을 퇴색시키고 그들이 양심에 근거한 도덕적 소신을 흐리게 하여 오히려 좌파에 이념 프레임을 제공하는 단초가 될 뿐이다. 그들이 지금처럼 하시게 그냥 놓아두자. 어설픈 간섭들이 되려 순수한 본래의 뜻을 그르칠까 걱정 된다. 그들은 자신의  용기와 소신이 결코 보수와 연관되어 회자됨을 오히려 자존심 상해 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다시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의 극치를 보인다 해도 그건 스스로 뼈와 살을 깎는 살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일이지, 누가 봐도 그대들만의 보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의 소신 발언에 대하여 자신들이 잘한다 한마디 거들면 마치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되고파하는 속내가 드러나고, 숟가락을 얻어서 묻어가려는 얄팍한 행태가 작금의 그대들만의 보수일 것이다.

행여 그들의 순수한 좋은 뜻이 오염될까 염려되니 감히 입에 올리지 마라. 그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은 진보의 토양에서 나왔으나 결코 고여 있는 그들의 이념에 구속되지 않으니, 이는 진보의 영원히 마르지 않는 공양 화수분 역할을 하던 민주화니 촛불희생이니 하는 무임승차의 화려한 꽃을 버려서, 청렴한 선비 정신의 표상인 진보의 열매를 맺고자 함이 아닐까 한다. 그저 오랫동안 무시로 잊혀져가던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진보가 있어 보수가 보수 다울수 있듯이, 보수 없는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랜만에 보는 저 선비들처럼 그 다툼의 시작도 국민을 위함이요. 마지막도 국민을 위함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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