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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해 접수화 해수혈(雁隨海 蝶隨花 蟹隨穴)"

이 문장은 춘향전에 나온다. 춘향이가 이 도령에게 전하라고 방자에게 한 말이다.  

<춘향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춘향은 전라도 남원에 사는 기생 월매의 딸이다. 춘향이 하루는 몸종 향단을 앞세워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남원고을 사또 아들 이몽룡도 구종배 방자의 안내로 광한루를 찾았다. 이 도령의 시선은 때마침 춘향이 그네를 뛰는 모습에 끌리어 관심을 갖게 됐다. 결국 방자더러 춘향을 불러오라 말한다. 방자는 춘향은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신분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말했다. 이 도령은 춘향 출생의 내력을 다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도령은 춘향을 불러오라는 그 이유를 천생만물(天生萬物)에는 물각유주(物各有主)라는 고인(古人)의 말을 인용해 형산백옥(荊山白玉)과 여수황금(麗水黃金)도 임자가 있음을 비유하면서 춘향을 불러오도록 힘주어 재촉했다. 

이에 방자는 이 도령의 안부를 춘향에게 전하면서 함께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춘향은 한사코 거절했다. 방자가 거듭 재촉하자 춘향이가 방자에게 이 도령한테 전하라는 말을 건넸다. "이애 방자야 들어 보아라. 점잖으신 도령님이 오라 함은 감격하나 여자의 도리로서 따라가기 괴이하니 도령님 전에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여쭈어라"고 했다. 긴 이야기는 생략한다. 둘은 결국 인연이 되어 평생을 같이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춘향전 내용의 대강(大綱)이다. 

춘향이가 이 도령에게 전하라고 방자에게 날린 돌직구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을 전해 들은 이 도령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귀가를 서둘렀다. 영문을 모르는 방자는 그저 말고삐를 잡고는 길을 안내했을 뿐이다.  

먼저 안수해(雁隨海)다. 기러기는 바다를 찾는다. 기러기는 물새의 대표 종이며,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다.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 2종이 주로 찾는다. 기러기는 낮에는 잔잔한 호수 등에서 잠을 자며 밤에는 인근 농경지를 찾아 낙곡 등 먹이 활동을 한다. 장가갈 때 신랑이 나무로 깎아 만든 나무기러기를 품에 안고 색씨집을 찾는 전안례에 등장하는 새가 기러기다. 결혼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것이 전승되는 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기러기는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인문학적 상징 새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차이가 크다. 울주군 범서읍 대리 배리끝 낙안소(落雁沼) 역시 기러기와 관련이 있다. 고요한 소(沼)에 기러기가 내려 쉬는 곳이라는 장소다. 현재는 청머리오리, 홍머리오리, 알락오리, 쇠오리, 흰빰검둥오리, 민물가마우지, 물닭 등의 놀이터로 변했지만 과거에는 기러기가 중심이돼 헤엄치는 모습을 쉽게 관찰된 곳이다.

다음은 접수화(蝶隨花)다. 나비는 꽃을 찾는다는 말이다. 경기민요 태평가에는 접수화의 의미를 보다 쉽게 풀어서 노래하고 있다. 굿거리 장단에 부른다. '꽃을 찾는 벌나비떼 향기를 쫓아 날아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속을 왕래 한다……' 날개 달린 나비가 꽃을 찾아야지 뿌리박고 있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의 꽃이 나비를 찾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뿌리내린 아름다운 꽃들은 겨울철 빼고는 볼 수 있다. 다양한 나비가 많이 찾아오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해수혈(蟹隨穴)이다. 게는 구멍에 숨어 도요새, 왜가리, 백로 등 무서운 포식자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다. 태화강의 해연(蟹淵)에서 게 구멍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연에는 매년 어리연이 흰색, 노란색 꽃을 피운다. 연밭사이로 콧등이 빨간 앙증스런 쇠물닭이 어린 새끼와 사뿐사뿐 먹이 활동하는 광경을 인상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절경의 장소가 해연이다. 춘향은 누가 누구를 찾아와야 하는지를 생태환경을 비유해 분명하게 이 도령한테 전했다. 춘향이의 생태 환경적 비유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도 있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새는 바람을 안다(巢居者先知風)와 동굴에 사는 짐승은 비를 안다(穴處者先知雨)는 말과도 통한다. 주객이 분명하게 구분됨을 알려주는 춘향이의 당찬 생태 환경적 비유의 한마디는 이 도령으로 하여금 만족의 미소와 한 평생 인연의 비익조임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전래동요에도 춘향이가 말한 생태 환경적 비유를 찾을 수 있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우리 같은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잠을 자고/
어제 왔던 새 각시는 신랑 품에 잠을 자고/꼬꿀꼬꿀 꼬꿀할매 영감 품에 잠을 자고/ 
납닥납닥 송애 새끼 방구 밑에 잠을 자고/미끌미끌 미꾸라지 궁게 속에 잠을 잔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기러기가 물 찾듯이, 나비가 꽃 찾듯이, 게가 집을 찾듯이 이 도령이 날 찾아오라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생태 관찰자가 아니면 선 듯 말할 수 없다. 남녀의 사랑에서 기본적으로 누가 누굴 찾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울산 태화강에는 낙안소(落雁沼), 태화강 국가정원, 해연(蟹淵)이 있어 기러기, 나비, 게 등 세 가지가 이미 오래전부터 갖춰져 있다. 춘향전의 저자가 미래의 울산 태화강 생태환경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꾸며나가지 않았나 할 정도로 울산의 생태환경과 춘향의 비유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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