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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과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집과 직장이 선암호수공원을 사이에 두고 있어 매일 걸어서 다닌다. 20여 분의 비교적 짧은 거리라 운동 삼아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늘 푸르고 잔잔한 호수에는 대자연과 호흡하는 물 병아리, 청둥오리 떼들이 평화롭게 유영하여 일상에 지친 산책객들에게 심신의 휴식을 안겨 준다. 양옆에 즐비한 조팝나무에는 앙증맞은 박새들이 저마다 존재를 알리듯 분주하다. 기슭 야산에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상쾌한 공기를 뿜어주어 청정 공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 청정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두 사람이 있다.

작년 이맘때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낯익은 두 사람과 마주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불교대학 도반이었다. 법당에서 수업 시간에만 함께 하다가 밖에서 만나니 새삼 놀라고 무척 반가웠다. 만면에 웃음을 띤 두 사람 손에는 쓰레기를 가득 담은 비닐봉지도 들려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아해하는 내게 그들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전법과 함께 수업 시간에 익힌 불법에 대한 가르침을 단순한 지식 터득이 아니라 몸소 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침 운동 겸 청소도 하며 건강과 더불어 환경 보전에도 일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잘된 일이냐"며 흐뭇해하는 두 사람 앞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작고 초라한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이내 감사함이 더 크게 다가와 같이 할 수 아쉬움을 접고 한껏 응원해 주기로 마음먹으니 가벼워졌다.

온 공원을 수놓던 흐드러진 벚꽃과 개나리가 잎을 떨구며 여름의 시작을 알렸다. 이른 아침인데도 볕이 뜨겁게 내리쬐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피부 진정제와 에너지 음료를 건네며 더위와 맞닥뜨리는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탰다. 그 사이 쓰레기 봉지도 두 배로 많아져 갔다.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도 하며 화끈하게 격려의 몸짓을 주고받았다. 만나는 사람 한 분 한 분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실천하며 공원 지킴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려는 지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나는 평소 비 오는 날을 좋아해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는 한 걸어간다. 그날도 남편의 지청구를 뒤로하고 튼튼한 골프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못 만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터덜터덜 모퉁이를 돌았다. 저만치서 우산을 받쳐 든 두 사람은 태연하게 다가와 무방비 상태인 나를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마주한 우리는 그저 말없이 웃음만 지었다. 보람과 뿌듯함, 반가움과 감동으로 어우러진 미소는 떨어지는 빗방울로 원을 그리는 호수 물결 위로 잔잔히 퍼져 나갔다. 

세 명이 공유하는 휴대전화 나눔 방에서 작년 봄 두 사람 중 한 분인 문 도반이 적은 단상을 옮겨 본다.

매일 아침 공원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가 어느새 석 달이 지나고 있다. 비닐봉지에 담던 쓰레기를 오늘부터는 에코백에 담았다. 비닐봉지도 걸림이 있어 아끼던 시장 가방을 쓰레기 가방으로 승진시키고 나니 더욱 기분이 새롭다. 그러고 나니 쓰레기가 보물처럼 느껴진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세 번이나 가득 담아 비웠다. 만나는 사람 모두는 기쁨이고 소중한 내 이웃들이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이야……이곳이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수행 터가 되고 있어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한 날들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닌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도 맘껏 누릴 수 있다는 잔잔한 울림을 준 메시지였다.

이 글을 그때 바로 일기장에 옮겨 놓고 수시로 꺼내 보곤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기꺼이 해내는 두 사람.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몸소 행하며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두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은 오래오래 계속될 것이다.

문미경, 전소현 도반님 "그대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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