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처용
울산의 처용
  • 울산신문
  • 2020.02.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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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담론] 김현우 처용탈제작가

울산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근대에 들어 공업화되며 많은 외지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도시가 형성되며 부작용도 나타났다. 그래도 울산의 문화와 문화유산들은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다. 필자는 40년 전 울산으로 와서 한때는 돈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회사 생활을 접고 끌리듯이 공방을 열어 처용탈을 깎게 되면서 울산을 공부하게 됐다. 울산은 다른 지방에서는 찾기 어려운 문화유산들이 많다. 우선 반구대암각화만 보아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대단한 유산이다. 다만 그 오랜 장구한 세월을 무탈하게 전해오다가 근대에 알려지고, 사람들이 탁본을 하거나 사연댐으로 침수되면서 회손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경북 군위에 가면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인각사에서 집필했다는 인연으로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울산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설화>를 품은 도시이다. 처용암, 망해사, 처용무가 1200년 동안 존재하고 있고 신라 이후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처용무가 시연됐다. 안타깝게도 처용무와 처용탈 제작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동안 중단됐다가 순종황제탄신 50주년 기념행사 때 처용탈이 궁중의 미술 공장에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필자가 초창기에 처용탈을 깎을 때는 국립국악원의 처용무기능보유자 고 김천흥 선생님을 찾아가 국립국악원의 처용탈을 만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조선 9대 성종임금 때 쓰인 <악학궤범>의 처용 얼굴 그림을 보고 국립국악원의 탈을 너무나 변형된 왜색이 짖은 처용탈이라 판단돼 지금까지 <악학궤범>에 기록된 방법대로 처용탈을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다. 

처용탈 작업 시 국립국악원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처용탈을 사용했는데 재질은 나무가 아니라 석고 틀에 문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드는 종이탈이었다. 그리고 처용탈을 만든 사람은 일회성으로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 종이나 FRP나 석고로 만들었다. 

필자는 공방을 차려 놓고 <악학궤범>의 기록대로 나무로 깎거나 삼베 천으로 처용탈을 만들고 있다. 틀에서 찍어내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공산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처용탈 제작은 <악학궤범> 9권에 "나무로 깎거나 옻칠한 삼베로 만든다"라고 기록돼 있다.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엄연히 기록이 남아 있으면 그 기록대로 작업해야 하고 그렇게 충실하게 만든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처용무를 시연하는 곳은 국립국악원과 울산에서는 울산남구문화원 내 처용무보존회에서 처용무이수자 박문연 선생이 팀을 꾸려 활동하며 울산 신정고등학교에서 오래전부터 처용무를 시연하고 있다. 

울산은 처용의 고장이다. 그러다 보니 공업축제가 처용문화제로 바뀌고 처용문화제 전야제에는 처용암에서 처용할아버지께 고유제를 올리는 것이다. 처용암 인근 산자락에 예전에는 처용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고유제는 원래 사당에서 제를 올려야 마땅하지만 없애 버린 지 오래됐다. 전에는 처용암에 들어가면 섬 전체가 바위와 돌로 이뤄졌으나 중간에 흙이 있는 평지가 있고 그곳의 커다란 입석 앞에 제단이 마련돼 있어 거기에서 제를 올렸다. 지금은 옛날 세죽마을 자리를 공원화시켜 놓고 처용가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고유제를 지내는데 처용무 시연으로 고유제 행사를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처용무를 그린 그림 <의궤도>는 <평양감사연희도> <봉배귀사도> <진찬의궤> 민간 처용무 <담락연도> 등에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악학궤범>의 처용 그림과는 턱이 길게 그려져 변형된 그림인데 이는 처용무가 전승되면서 처용탈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적 변형일 수도 있겠으나, 아니면 처용무를 주관하는 사람의 주문에 의해 변형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처용 얼굴 그림으로는 가장 오래된 <악학궤범>의 그림을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판단해 지금까지 처용탈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울산은 선사시대, 신라, 고려, 조선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다. 필자는 울산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찾아 작업하는 진정한 울산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한 도시의 문화자산을 현대로 끄집어내어 그것을 그 도시의 상징으로 만드는 일은 한두 사람이 감당할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내고 지키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울산에 산재해 있는 유·무형의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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