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만나는 한민족의 뿌리 3
울산에서 만나는 한민족의 뿌리 3
  • 울산신문
  • 2020.02.1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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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울산탐구]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한반도 인류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울산박물관 전경.

# 울산박물관과 인류사의 미스터리
과거의 유물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는 현대사에서 영토확장욕과 궤를 같이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의 유물, 예술품 수집 열기는 광적이었다.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히틀러는 저명한 미술사가이며 제3제국의 박물관장 오토 큄멜에게 16세기 이후 독일에서 탈취된 미술품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보고서 작성을 명했다. 바로 큄멜 보고서다. 이를 근거로 히틀러는 프랑스에 1,800점의 예술품 반환을 요구했다. 표면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 요구는 결국 프랑스 점령의 명분이 됐다. 과거의 기록이나 기념물, 예술품을 찾아내고 이를 정리하는 작업은 국가를 세우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는 이같은 작업을 국가재건과 민족의 응집력을 구축하는 데 철저히 이용했다. 히틀러가 박물관을 만들었다면 아마도 거대한 게르만 민족사를 인류사의 중심에 놓고 박물관을 설계했을 법하다. 비록 히틀러가 그의 계획대로 웅대한 박물관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의 광적인 유물수집은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을 한 바퀴 돌면 그 이유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히틀러만이 아니라 세계사의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의 민족이 이룩한 과거의 족적을 한 곳에 담아내길 원했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제국주의 시대, 세계를 한 손에 거머쥐고 싶어 하던 지도자들이 자신의 민족을 넘어 온 인류의 흔적을 자신들의 영역 안에 담아두려 한 것도 그런 욕망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살아 있다. 죽은 영혼과 육신이 진흙과 돌덩이, 그리고 금속과 안료에 뒤섞여 때로는 욕망으로 때로는 용서로 낮고도 높게 자릴 잡고 있지만 그 박물관 속 과거는 언제나 그들의 시대, 그들의 욕망과 절제를 노래하고 있다.

바로 그 박물관이 10년 전 울산에 들어섰다. 엄청나게 늦은 건립이었지만 울산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대한민국 어떤 곳의 박물관보다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한반도 동남쪽 끝, 귀신고래 바로 돌아 북녘 얼음바다로 머리 향하는 이 땅이 오래고 먼 과거의 역사를 품고 있음을 번듯하게 알릴 공간이 이제서야 들어선 셈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울산박물관은 그런 엄청난 콘텐츠를 품고 있는 인류사의 보고다. 

박물관은 애초에 전시의 공간이 아니라 학문을 논하던 공간이었다. 박물관은 BC 300년경 이집트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궁전 무세이온(Mouseion)이 그 기원이다. 예술의 여신 뮤즈를 위해 마련한 이 공간에서 이집트인들은 과거의 유물을 옮겨 옛사람들의 지혜와 그들의 예술 세계를 공부했다. 그들이 과거를 배우려고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과거를 통해 내일의 방향을 읽으려는 시도였다. 그렇다. 박물관은 죽은 영혼과 죽어 있는 물상을 안치하는 장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파리에 가면 루브르박물관을 찾고 히드로 공항에 내리면 지도에서 대영박물관부터 찾아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과거는 인류의 지난 날이자 먼 옛날 우리 조상과 연결된 삶의 방식과 소통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박물관에 기꺼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는지도 모른다.

울산에 온 사람들은 이제 무엇보다 첫 번째 행선지를 박물관으로 돌려야 한다. 굴뚝 도시 울산에 박물관이 들어섰으니 굴뚝의 역사가 즐비하리라는 상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공단의 야경이 경이롭겠지만 울산박물관을 찬찬히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울산은 미안하지만 한반도 인류의 기원이 깃든 땅이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육로나 해로를 따라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이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울산박물관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서생면 신암리 유적이나,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이 있고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반도 선사문화 일번지인 대곡천 일대의 암각화는 울산이 고대 한반도 정착민의 영험한 영역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울산은 천혜의 땅이다. 그 천혜의 땅에서 일궈낸 문화의 힘이 고대국가와 신라, 고려와 조선을 지나 오늘에 연결돼 있다. 그 오랜 역사의 끝자락이 산업수도 울산이지만 오래된 과거는 울산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문제는 울산박물관이 울산의 제대로 된 역사와 뿌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류사의 이동경로와 울산에 자리한 한민족의 뿌리를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데 울산박물관은 여전히 부족하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투자가 있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울산의 산하와 과거사를 짓밟고 깔아뭉갠 근대화의 주역들은 원죄의식을 갖고 이 부분에 대한 투자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울산을 허물어 부를 쌓은 기업은 울산의 과거를 복원하는데 아낌없는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결국 그런 작업이 울산의 미래를 제대로 열어가는 길이고 울산을 통해 부를 축적한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노블리스오블리주 정신이다.  

그렇다면 정말 울산은 인류사, 아니 한반도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한 뿌리라는 근거는 있는 것일까. 울산에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왔을까. 그 근거를 제대로 규명해야 앞선 외침들이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이제 그 근거를 더듬어 보자.

주류 고고학자들이 울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인류의 여러 무리들은 아득한 석기시대부터 육로 또는 해로로 이 땅에 정착했다. 서생면 신암리, 장현동 황방산,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 등지가 그 증좌가 남은 곳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금의 북구 중산동, 온산면 산암리, 언양읍 동부리, 삼동면 둔기리, 온양면 삼광리, 상북면 덕현리, 동구 일산동, 중구 다운동, 삼남면 방기리 등지에서 각종 고대유적과 유물이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모두가 이 땅에 사람이 살게 된 흔적이다. 남부권에서 전라도지역과 함께 고인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드러난 지역이 울산 인근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울산지역에서 고대 인류사를 규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다. 사연댐 상류에 위치한 두 곳의 암각화에는 고래·거북·사슴·멧돼지 등의 각종 동물 그림이 있고, 원·삼각형·마름모 등의 기하학적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이는 울산지역이 고대 인간사회의 집단생활의 흔적과 문화원형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중대한 증좌다.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울산의 유적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196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이뤄진 울주군 온양 삼광리유적이 최초다. 이후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진 유적은 110여 곳이고, 출토된 유물만 6만여 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유물을 보관·관리할 박물관이 없었던 이유로 출토 유물의 거의 대부분이 외지로 빠져나갔다. 그 수량은 대략 전체 출토 유물의 80%에 육박하는 4만7,000여 점이나 된다. 이 중에는 신암리유적의 덧무늬토기와 황성동유적의 이음식 낚싯바늘 등 신석기유물을 비롯해 외광리유적의 동물무늬 굽다리항아리, 대대리 하대유적의 청동솥, 중산동유적의 오리모양토기 등 보물급 유물이 다량 포함돼 있다. 게다가 간월사터와 장천사터, 운흥사터에서 나온 귀중한 불교 유물들도 김해와 동아대, 통도사 성보박물관 등으로 흘러간 상태다. 이처럼 지역 출토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중앙, 김해, 경주 등 3개 국립박물관과 영남지역 각 대학박물관 등 모두 24개 기관이나 된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간 울산박물관으로 돌아온 유물도 있지만 여전히 남의 것이 된 유물이 대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정리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울산의 뿌리와 한반도 인류사의 기초를 규명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 작업에 지금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이 모아진다면 울산의 뿌리와 인류사의 미스터리를 제대로 그려나갈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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