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게
기세 좋게
  • 울산신문
  • 2020.02.2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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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이필선 수필가

영화 속 배우의 대사처럼 그야말로 시의적절하다. 어쩌면 이렇게 혼란스러울 사태를 미리 알고 각본을 짠 것 마냥 한 편의 영화가 아픈 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땅꼬마 같은 작은 나라에서 세계영화사에 빛나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날, '오스카상' 수상의 쾌거를 거두었다. 대한민국의 큰 자랑거리라 정녕 반갑다. 우리나라 문화의 일면을 세계로 방출한, 역사적으로 기릴 일이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명 '우한 폐렴'이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불똥 튀듯 날아다녀 세상이 휘청거리고 있다. 발병 뉴스와 함께 진작 해외여행이나 출장 후 국제공항으로 들어오는 인원에 대해 몸뚱이 주인조차도 모르는 몸속의 열을 잡아내느라 열 감지기를 적용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감염 확진자와 감염 가능자를 나누어 의료기관과 관공서 등에 격리수용을 하고 자가 격리로 화상 진료를 한다고 한다.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는 크루즈 여행을 하다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 3,700여 명의 관광객이 발이 묶여 배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지내다가 엊그제서야 감염되지 않은 관광객부터 하선을 시키기 시작했다. 선실은 바이러스 온상인 양, 날마다 수십 명의 감염확진자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애가 탈 뿐이다. 

최초 발병국인 중국은 정부의 언론 통폐합 속에서 진작 공표하지 않고 숨긴 탓에 바이러스가 더 퍼졌다고 세계인의 질타를 받고 있다. 자국민들 또한 열악한 환경 속에 격리된 환자와 사망자 처리, 일반인을 위한 감금 등 대처 방법을 비판하며 공산당 정부를 향해 혁명이라도 일으킬 듯 살벌하다. 

우리나라는 격리됐던 사람들이 무증상으로 확인 후 더러 퇴원도 하고 잠시 주춤해지나 했는데 날이 지날수록 감염경로조차 알 수 없는 환자가 속출하더니 드디어 이곳 울산까지도 마귀의 손길이 뻗었다해서 많이 놀랐지만 다행히 오보라 했다. 최초 발병일로부터 두 달이 다 됐건만 날마다 감염확진자 수가 눈사람처럼 불어난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 못 된 건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치료할 백신도 없다. 막연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지도 모를 감염확진자가 될지도 몰라 불안감만 고조되고 있다. 

일찍이 유명 언론학자는 말했다. 핵이 문제가 아니고 바이러스가 문제 되는 세상이 온다고. 바이러스는 문명의 병이라고 일컫는 전염병이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생겨 지역 간 국가 간 이동이 용이해 지면서 생긴 병이란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발달하고 연구할수록 고립의 대가는 인간이 그 최후의 상황을 맡게 된다. 바이러스는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면서 자연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경고하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가난한 반지하에 사는 기우(최우식)의 친구가 뜻밖의 선물을 들고 오면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귀히 여기는 돌인데 좋은 일이 생길 거라 했다고 전하며 유학길에 오른다. 방바닥보다 높은 곳에 변기를 두고 창 너머엔 오줌을 지리는 취객을 예사로 봐야 하는 참담한 일상 속에서 피자 박스를 접으며 백수인 네 식구가 산다. 침울한 반지하 속 백수인 기우 아버지 기태는 그 돌을 진경산수석이라고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참으로 시의적절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기우는 친구가 부탁했던 부잣집 딸 다혜의 과외를 시작한다. 자신 없이 문제를 뒤적이는 다혜의 손목을 잡고 뛰는 심박수를 체크하다가 시험 당일날 그렇게 떨면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수능 합격은 떨지 말고 기세 좋게, 계속 치고나가는 '기세'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돌 덕분인지 기우는 보란 듯 기세 좋게 온 가족을 백수 생활에서 구해낸다. 돌이 준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을까.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바이러스에 못 이겨 허우적대는 이 난국을 헤칠 힘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 속 묵직한 돌이 짓누르던 우울감을 떨쳐주며 '기생충'으로 인한 수상의 영광이 이 형국을 치고나가는 기세가 시의적절하다고 애써 끼워 맞춰 본다. 

계단 위 훤한 저택과 어둡고 습한 반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극명한 대치의 선, 어떤 냄새라도 날려 버리는 열린 지상과 달리 제각기 달라야 할 냄새조차 허용치 않고 뭉쳐버리는 반지하에서 나는 냄새…, 나는 기생충의 개념을 선과 냄새에서 즐겼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떼 공격을 하는 이 난국에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휩쓰는 걸 보며 국민들이 기뻐하는 게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영화는 반전(문광의 재등장)에 반전(오스카상 수상)을 거듭하여 스크린 밖으로 나와 아픈 국민들을 다독이고 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기세 좋게 치고 나왔다. 그 기세가, 허세같이 좀 과한들 어떠랴,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고 대중들이 많은 곳을 안 가려는 노력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때, 기세 좋게 달려온 희소식을 사정대로 즐겨 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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