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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인은 왜 울산에 암각화를 남겼나
지난주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에서 한국의 선사시대 바위구멍 암각화에 대한 학술연구총서를 발간했다. 제목은 '한국의 바위구멍 암각화'다. 바위구멍이란 자연바위나 고인돌에 새긴 둥근 홈으로 일반적으로 '성혈'(cup mark)이라 부른다. 바위에 새긴 홈, 또는 홈과 홈 사이를 선으로 이어 특정한 내용을 드러내거나 의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런 유적을 바위구멍 암각화로 규정한다. 바위구멍 암각화는 해석에 따라 여러 설이 있지만 밤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것이라는 주장과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반구대연구소가 발간한 연구서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발견되는 바위구멍 암각화 유적 정밀조사 결과를 모은 것으로 관련 학계와 연구자들로부터 그 가치와 의미가 주목되고 있다. 이 책에는 함안 동촌리 고인돌, 경주 서악동 암각화 바위, 포항 신흥리 오줌바위 등 국내 37개소 유적에서 조사된 553점의 바위구멍 암각화에 대한 유형별, 지역별 분류 통계표 및 개별 암각의 실측치가 제시됐다. 특히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 알바위에 새겨진 23점의 바위구멍 암각화에 대한 종합조사 결과는 단연 돋보인다. 이 책을 대표 집필한 전호태 교수는 "이번 연구서를 통해 아직은 모호한 상태에 있는 바위구멍 암각화의 내용과 성격을 다양한 방식으로 짚어내고 읽다 보면 그 본질적 의미와 가치도 충분히 드러날 것"이라며 "이번 바위구멍 암각화 연구서는 암각화학을 포함한 선사미술 연구는 물론, 종교학과 민속학, 그리고 역사학과 고고학, 문화사의 제 분야 연구에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바위구멍이 신비로운 고대인의 영적 상상력의 형상물이라는 점은 여러가지 연구로 입증되고 있다. 고대인들의 미스터리한 흔적은 세계 여러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나스카 라인이다. 나스카 지상화라고도 부르는 이 흔적은 지난 1939년 하늘 위에서 처음 확인됐다. 고대인의 한 무리가 지표면에 거대한 그림을 그려 놓았지만 그 모양은 지표로부터 일정한 높이 위에서 확인되는 특별한 흔적이다. 미스터리한 나스카 라인은 태평양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위치한 나스카 평원 곳곳에 그려져 있다. 현재까지는 고대 나스카인들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들이 형상으로 남긴 고래와 원숭이, 도마뱀 등 동물을 비롯 각종 기하학적 도형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인들은 여러 형태의 흔적을 다양한 방법으로 남겼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울산에 있다.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암각화, 그 중에서도 반구대암각화는 고대인들이 새겨둔 그 시대의 영적 표현물에 대한 해설서다.

최근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 심사에서 두 차례나 '보류' 결정을 내렸다. 문화재청 산하 심의회는 반구대 일대를 아우르는 유산의 개념 도출과 탁월성 입증 등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우선등재 목록에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두 차례 보류를 결정한 문화재청은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였다.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 목록은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에 해당해야 하고,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여야 한다는 근거를 밝혀놓았다. 결론적으로 반구대암각화의 경우 '탁월한 보편적 가치 증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유산의 현황과 개별적 가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열의를 보였지만 탁월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해 내는 데는 미흡하다며 또다시 보완하라고 돌려보냈다.

이런 결정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문화재청이라는 조직은 도대체 어느나라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가치를 입증하는 조직인지 묻고 싶다. 울산이 반구대암각화에 목을 매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은 '뿌리'다.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우리의 뿌리를 웅변하는 증거물이다. 실증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변변한 고대역사서 부재를 거론하며 이 땅의 역사를 단군조선 이후로 축소한 일본 황실의 어용학자들이 죽어도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민족의 이동경로가 반구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지난 1971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성과 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해가 거듭할수록 반구대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지만 정작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야 할 문화재청은 남의 문화유산을 보듯 평가하고 비평하고 지적만 한다. 

시베리아 우르쿠츠크 인근에는 시스키스키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암각화만큼 시련과 고초를 겪은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의 뿌리를 이야기해 준다. 사실 이 암각화 이외에도 바이칼 인근 지역은 우리 민족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민족이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시베리아에 들어와 샤먼(무당)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시스키스키 암각화는 바이칼 인근 지역에 위치해 있다. 불행하게도 그 중에 하나는 1948년에 완성된 이르쿠츠크시 남쪽의 앙가라강에 세워진 댐으로 인해 수몰됐고 우여곡절 끝에 남은 하나가 바로 시스키스키 암각화다. 사슴과 사냥술을 묘사한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지난 2008년 내몽골 적봉에서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됐다.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발견한 이 암각화는 바이칼에서 시작된 암각화의 흔적이 한반도 동쪽 끝 울산으로 연결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내몽골 암각화는 천전리각석에 새겨진 방패형 검파형 암각화의 기원을 찾는 중요한 증거물이 됐다. 특히 내몽골 지가영자 유적의 남쪽 사면 바위 군락의 상단부에서는 울산 천전리암각화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은 마름모모양, 동심원모양, 사람얼굴모양 등의 암각화가 나와 학자들의 가슴을 달구기도 했다. 바이칼과 내몽골, 요하문명지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고대인류의 이동이 바위그림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한민족 주류의 기원이 북방에 있다는 설은 가설의 단계를 넘어 인류학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검증이 되는 과정에 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한민족은 혈통적으로 몽골로이드계 인종에 속한다. 몽골로이드계 인종이란 오늘날 인류의 직계조상으로 간주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한 후, 지금으로부터 10만 년∼5만 년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최초의 원주지를 떠나 오늘날 바이칼호를 축으로 그 연안과 동부지역에 자리잡은 인종집단이 그들이다. 바이칼에 터를 잡은 민족의 일단이 내몽골과 요하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고 그 종착지가 울산이었다는 증거가 바로 반구대암각화다.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세계 동물학회에서는 인류와 고래의 관계를 연구할 때 그 출발로 반구대암각화를 제시한다. 학자들은 인류가 기원전 6,000년경부터 고래를 잡았고 그 증거가 울산의 반구대암각화에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수만 년 전 바이칼을 무대로 사슴사냥으로 문명을 일으킨 몽골로이드인들은 '따뜻한 남쪽, 풍요의 땅'을 찾아 해 뜨는 땅, 동쪽으로 이동했고 그 이동의 종착지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울산을 택했다. 그들은 울산에서 바위에 고래를 새기고 해가 떨어지는 시간 샤먼의 주술에 따라 다음날 아침, 동트는 바다에서 큰 고래 한 마리 사냥할 수 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는 것이 고대인들이 반구대암각화에 남긴 그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흔적이 시베리아-예니세이강 중류, 앙가라강-레나강 상류 지역부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연해주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고대인류의 문화적 유전인자가 흘러온 단서다. 바위구멍 암각화나 나스카 라인처럼 오래전 지구를 살피며 정착지를 찾아 나선 고대인들이 후대에 남긴 뿌리에 대한 암호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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