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병(火病)'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장기간 누적된 이후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 및 정신의 복합 증후군으로, 한의학의 기본 원리와 질병 개념을 가지고 있다. 

화(火)는 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분노를 주로 의미한다. 분노는 우울, 불안, 기쁨 등과 같은 인간의 중요한 감정 중의 하나로, 화 또는 분노에 관련된 신경정신과적 증후군은 흥미 있는 연구 대상이다.

현재까지 화병이 정신의학의 표준 진단 체계에서 별도의 정신장애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으로 분노에 대한 문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특히 단순한 정서적 반응으로서의 분노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질환군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 보고된 외상 후 격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 PTED)와 같은 새로운 독립적 질환군들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며, 화병 또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화병은 어떻게 진단할까? 화병의 초기에는 분노의 폭발이나 치밀어 오름 등의 증상이 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의 답답함, 목에 무엇인가 걸린 느낌, 얼굴의 열감 등을 호소하고, 이후에 우울과 불안, 가슴의 응어리 등의 증상을 가지는 등 다양한 정신적·신체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 화병이 만성화되면 우울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화병 환자의 많은 수가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화병은 한국인의 다양한 정신장애에 대한 중요한 연결 고리와 모델이 된다. 그리고 분노는 고혈압, 뇌졸중 등의 심혈관 질환 및 암 등 신체 질환과도 관련이 있어 초기 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화병 치료는 다양한 치료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단기간에 반응이 나타나는 치료 방법이 있는 반면 지속적인 치료 혹은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에 치료 시기와 증상에 따라 각 치료법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침구 치료는 가장 단기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으며, 뜸과 부항 치료도 침 치료와 병행하여 즉각적인 증상 완화를 목표로 실시한다. 화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주요 경혈로는 전중, 중완(中脘), 천추(天樞), 합곡(合谷), 족삼리(足三里), 백회(百會), 용천(湧泉) 등이 있다. 

특히 이 중 전중혈은 진단, 치료, 경과 판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혈자리인데, 양쪽 젖꼭지를 이은 선의 가운데 부위(흉부의 정중앙 부위)이다. 이 부위를 눌렀을 때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변화로 진단과 치료, 경과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약물 치료는 단기적으로는 증상완화의 목적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질병 치료와 증상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투여한다. 하지만 약물의 선택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화병 환자는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등의 다른 스트레스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에 복용하는 양약과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한약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화병의 특징 가운데 열(熱)에 대한 문제, 답답함에 대한 문제, 한열(寒熱)의 양상, 정서적인 측면과 신체적 취약성, 그리고 만성화되면서 생기는 허증(虛症)을 고려해서 처방을 결정해야 한다. 분심기음(分心氣飮)은 화병 치료의 대표적인 처방이고, 특징적인 증상에 따라 억간산(抑肝散),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 황련해독탕(黃連解毒湯), 귀비탕(歸脾湯) 등의 처방을 고려할 수 있다.

근본 치료를 위해서는 상담을 포함한 정신 치료도 필요할 수 있다. 화병 환자와의 면담 시 치료자는 화병을 유발하게 된 발병동기와 이에 대한 환자의 대처방식, 환자의 성격, 주변 사람들과 환자의 관계, 스트레스 사건과 증상의 관련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방정신요법은 이정변기요법(移情變氣療法 - 환자의 마음을 바꿔 주어서 병리상태를 조절하고 질병회복을 촉진하는 치료법), 지언고론요법(至言高論療法 - 대화로써 설득해 치료하는 방법),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 - 오행설의 상생 상극 이론을 응용한 심리치료요법), 명상(冥想), 음악치료 등이 화병의 치료에 권고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