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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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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우중충하다. 사람들은 마스크 속에 마음까지도 숨기는 것만 같다. 도시 전체가 표정을 잃어 빛바랜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무엇과 싸운다고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낸다. 또 긴급속보 알림이 요란하게 스마트폰에서 울린다. 처음엔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젠 꼭 그렇치도 않다. 마스크를 쓰지않은 사람은 이상해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피한다. 모든 생활이 중단되니 시간 개념이 없어졌다. 어차피 꼬맹이들이 종일 집에 있으니 날짜도 상관없다. 실시간 확진자가 몇 명 늘었는지 그들 동선을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됐다.

출강하는 대구의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개강이 늦춰지더니 또다시 2주는 비대면 강의를 해야한다며 말이다. 이 사태가 언제 수습될 지 걱정돼 또다시 뉴스를 살펴본다. 뉴스 키워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달라졌는데 우한폐렴, 박쥐, 중국, 일본크루즈선, 신천지, 대구, 마스크 그리고 지금은 키즈대첩이다. 꼬맹이들과 이리도 오랫동안 집에만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거 하지마! 어~ 위험해! 뛰지마! 제발 그만 좀 뛰어~."
청소의 의미가 없어지고 포기하는 게 늘어나고 휴~ 아직도 멀었나 싶다. 이렇게 또다시 2주를 더 있어야하는데 점점 머리 속에 코로나는 잊혀지고 아직도 내가 이렇게 미숙한 엄마라는 사실에 화 나고 그동안 도와준 모든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나도 이런 지경인데 손님없는 가게를 지키는 사장님들이나 수업이 끊겨버린 선생님들이나 연주회가 취소돼 버린 음악가들 그들뿐이겠나.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왈츠의 황제'라 불리우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2세(Johann Strauss ll·1825-1899)의 '박쥐'(Die Fldermaus)라는 오페레타 작품이 있다. 오페라보다 규모가 작은 미니오페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설이나 설화, 문학작품에 기반을 두기 보다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며 희극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 작품 역시 그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상류사회를 풍자한 것인데 지금의 모습을 풍자했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상류계층의 쾌락을 쫓는 돈 많은 부자 남편, 재력만 보고 결혼한 그의 부인, 허세로 가득찬 귀족들, 상류사회 스폰서를 잡고 싶은 하녀 등 등장인물만 보더라도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이다. 이쯤되면 제목이 왜 박쥐인지 슬슬 궁금해진다. 부자 남편 아이젠슈타인은 그의 친구와 가장무도회에 놀러갔다가 술 취해 길거리에서 잠 든 친구를 버려두고 혼자 마차를 타고 집으로 와 버린다. 다음날 아침 길거리에서 깨어난 친구는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는데 그의 모습은 전날 가장무도회에서 박쥐 분장을 한 그대로였다. 친구는 그 일을 잊지못하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가 극을 이끌어나간다. 그래서 제목이 '박쥐'일 것이다. 

친구의 복수 시나리오와 거기서 우연히 발생되는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며 일들은 꼬여가는데 결국 모든 건 전날 먹은 술 때문이라며 사건이 끝나 버리는 것은 자신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상류계층의 웃픈현실이었을까. 아니면 묘하게 보이는 우리의 현실일까. 아무튼 내용은 더 가관이다.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은 폭행죄로 구류처분을 받지만 박쥐친구 꾀임에 넘어가 파티에 놀러간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숨긴채 감옥에 가는 것처럼 둘은 애절한 이별을 하고 남편이 떠나자 신이 난 아내는 애인을 집으로 불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때마침 형무소장이 나타난다. 형무소장은 아내의 애인을 남편으로 알고 잡아가고 심심해진 부인은 파티에 가고 상류층 스폰서를 갈구하는 하녀는 몰래 부인의 옷을 훔쳐입고 파티에 참석한다.

모두가 결국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은 그곳에서 헝가리 귀족으로 가장한 자신의 부인에게 반해 아내를 유혹하려 노력하고 아내는 남편의 바람피는 증거를 수집하려고 그 모습을 두고본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술 취한채 감옥에 가고 그곳에 이미 자신이 수감돼 있는 것을 알고 놀란다. 그때 부인이 면회하러 온 것을 보고 놀라 변호사라며 감옥으로 들어가 자신 대신 잡혀있는 남자를 만나 이 모든 전말을 알게된 아이젠슈타인은 분노하며 아내에게 화를 내지만 아내는 전날 무도회에서 자신이 바로 유혹하려했던 그 여인이라며 바람피우는 것에 똑같이 화를 낸다. 이때 박쥐친구가 나타나 이 모든 일은 자신이 꾸민 복수극이었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모두 술 때문이었다며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며 유쾌하게 끝 난다. 막장 드라마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일까?

오페레타 '박쥐'의 서곡은 왈츠의 황제란 명색에 걸맞게 너무나 유쾌하고 즐거운 노래로 연주되며 사랑받는 슈트라우스의 걸작 중 하나다. 힘든 시간 모두가 끝까지 잘 견뎌내 지금보다 더 큰 아픔이 없기만을 바랄뿐이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모두가 이 시간을 잘 견뎌냈다고 자축하며 이 곡을 기분좋게 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도 코로나19와 싸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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