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도 심겠습니다
꽃이라도 심겠습니다
  • 울산신문
  • 2020.03.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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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윤경화 수필가

더디게 올라오던 봄이 우수를 지나자 개난초 잎을 쑥 밀어 올리며 초록 미소를 짓습니다. 무채색의 겨울 한철을 보내느라 우울하던 차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십여 년을 한 곳에 모여 살더니 식구가 많이도 늘었습니다. 

화초는 대개 꽃을 보기 위해 심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개난초는 꽃도 좋지만 이른 봄의 빈 뜰에 대지의 녹색기운을 듬뿍 머금고 힘차게 올라와 봄을 치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마침 봄철인데다 이사하기 좋은 날씨라 미룰 것 없이 새 터를 정하고 옮겨심기를 합니다. 어느새 보라색 아이리스도 묵은 잎 사이로 녹색기운이 번집니다. 아닙니다. 잠시 착각한 듯합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의 아이리스 가든'를 떠올렸던 모양입니다. 이 그림은 보라색 아이리스를 풍성하게 심어 놓은 화가의 집 앞 화단 풍경이랍니다. 화가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경은 거의 자신이 가꾼 꽃이 가득한 정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평생 땅을 사들여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심고, 가꾸며 꽃을 그렸답니다. 모네의 꽃그림은 하나 같이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꽃과의 소통을 통해 예술의 세계를 확장하고, 정서적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모네의 붓 끝에 흐르던 꽃의 서사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그의 정원에 사랑과 기쁨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미술이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원예치료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가 가드닝을 즐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정원에서 산책을 하게 했다고 하니 아득한 선인들도 원예치료의 효능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나 역시 생각이 복잡하게 꼬여 안정을 찾고 싶을 때는 자연스럽게 숲길을 따라 걷거나 정원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굳이 원예의 효능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녹색과 어우러진 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입춘이 지나고 땅기운이 부드러워지면 나도 모르게 꽃들의 살이에 참견을 하게 됩니다. 올봄에는 대놓고 끼어들고 싶어집니다. 우선 여기저기에 꽃을 심고 싶습니다. 의외의 장소에 작은 화분 한두 개를 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한적한 길모퉁이에 칸나 한 포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올봄은 꼭 그렇게라도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 까닭은 근년에 들어와 경기 침체로 어려워하던 중 나라에 황당한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물론 일면식도 없는 중국 후베이에서 왔다는 그 손님은 무뢰하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마스크족을 웬만큼 만들고 나서야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라는 이름표를 달더군요. 담력이 약한 사람은 기겁을 할 일을 날마다 벌이고 있는 당사자의 이름이랍니다.   

병증은 '고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호흡이 곤란하고, 폐렴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다가 심한 경우 폐포가 손상되어 호흡 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집계에 의하면 2020년 3월 6일 0시 현재 확진자수 6284명과 사망자수가 42명이라고 합니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는 대구와 경북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분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14세기 알제리 오랑의 어느 골목에 흐르는 고통과 절망의 신음이 들리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왜 이럴까요? 김연아 선수와 손흥민 선수가 빙판과 그라운드를 누비며 세계를 제패할 때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더니 요즘은 누가 나무라지 않아도 모두 내 탓인 양 자꾸만 기가 꺾입니다. 내가 망나니 같은 그 손님을 초대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내 일도 감당할 수 없으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나 봅니다. 봉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 대구에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봅니다. 서울 S병원에 근무하는 아들 내외가 걱정이 되어도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느 때는 나라가 일일 생활권이라서 좋아했는데 그 손님도 일일 생활권을 용케 알고 이미 나라 구석구석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구에 있는 친구의 발이 더욱 단단히 묶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국민은 어려움이 있을 때 모두 하나가 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의 궁량으로 힘을 보태니까요. 건강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일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아프지 않는 것만도 '크게 돕는 일'입니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평소 몇 곱절의 걱정과 어려움,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애국자라고 하던 친구의 말도 생각납니다. 평범하던 그 말이 오늘은 명언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사는 집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 주변에 서 있는 교목에 마음을 기울여 거름을 듬뿍 줄 것입니다. 식물처럼 정직한 것도 없더군요. 분명 봄에는 환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여름이 오면 무성한 녹음을 이루어 행인들을 위로하고 힘이 솟게 할 것입니다. 칸나 화분 하나를 봄부터 정성껏 마련하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상가의 입구에서 손님을 맞게 할 겁니다. 가을엔 국화분도 몇 개 가져다 놓을 겁니다. 정말이지 작은 일입니다. 

이름마저 생소한 '코로나19'란 손님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한동안 그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입니다. 화초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우리는 꽃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말을 건네면서 기꺼이 기다릴 겁니다. 큰 회오리가 남긴 상처 위에 피는 미래라는 꽃은 적어도 오늘보다는 건강할 테니까요.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이지만 올봄에는 정성껏 꽃이라도 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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