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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가로수에 벚꽃이 만개했다. 벚꽃으로 거리는 새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그렇게 핀 벚꽃은 옛날의 힘들었던 그 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2월 입대해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으니 4월이 됐다. 보름쯤 지나자 비로소 주변의 사물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봄볕 따뜻한 일요일, 빨래 줄에 세탁한 속옷을 널다가 부대 철조망 바로 앞에 분홍색 꽃잎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벚꽃이었다. 다가가 벚나무를 만져보았다. 그랬더니 내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 소리와 "벚꽃아, 벚꽃아, 올해 피고 앞으로 두 번이나 더 피어야 내가 집으로 돌아가겠구나"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5월, 두 번의 벚꽃이 더 피는 것을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 우리 주위에는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벚꽃이 지천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벚꽃을 보려면 단단히 봄놀이 준비를 하고 하루 시간이 필요했다. 진해, 경주 불국사 등 벚꽃 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 어린 애들을 데리고 불국사로 벚꽃놀이를 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최대 벚꽃축제가 열리는 진해군항제도, 경주도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 귀한 벚꽃이 출근길에, 퇴근길에도 바로 있다. 조금 더 많이 보려면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궁거랑 벚꽃길에서 숨 막히는 벚꽃을 볼 수 있다. 낮에는 낮이라, 밤에는 밤이라 그 황홀한 경치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언제부터 벚꽃나무가 우리와 가깝게 됐을까? 벚꽃보다는 매화·복숭아꽃·살구꽃·진달래·개나리·배꽃이 통상적인 우리나라 봄꽃이었다. '고향의 봄'에도 벚꽃은 안 나온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은 또 어떤가. 이호우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에 나오는 '살구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는 벚꽃 아래에서도 흥얼거리는 시조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외면 받았던 벚꽃이 이제는 당당히 봄의 주인공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 이유를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도로가 건설되고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로변 가로수는 악취를 뿜는 은행나무를 대체할 것이 필요했는데 그 나무가 벚꽃이 됐으며, 아파트 단지에는 조경공사를 해야만 준공이 되므로 이에 필요한 나무도 벚나무가 됐다. 벚꽃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아직 벚나무 단점은 찾지 못했지만 좋은 점은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벚꽃나무는 별다른 병충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관리에 큰 어려움이 없다. 이는 경제적으로 큰 이점이다. 
둘째, 벚꽃나무는 매년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것도 엄청나게도 많은 꽃을 피운다. 그 꽃을 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아름다움에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계속 보게 된다.
셋째, 벚꽃나무는 꽃만 보여주고 다시 일 년을 기다리게 하는 나무가 아니다. 벚나무의 진정한 가치는 꽃송이가 만개해 절정을 지나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낙화로 다시 한 번 우리를 숨 죽이게 한다. 우리는 그 꽃바람 속에서 다시 올 봄을 기약한다.
마지막으로 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 열매를 맺고 푸른 잎을 틔운다. 그 잎은 아쉬움을 주고 간 꽃잎을 대신해 또 다른 생명을 우리에게 당당하게 보여준다. 여름이면 푸른 잎이 시원한 그늘도 돼 준다. 한 나무가 두 가지 풍경을 보여주니 누가 싫어하겠는가.

조만간 벚꽃은 떨어지고 그 곳에 싹이 돋아나겠지. 한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을, 잎이 나는 것을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상사화(相思花)라 한다. 나는 그 상사화의 맨 위에 자리 잡는 것이 벚꽃나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까지  벚꽃나무를 상사화라고 생각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이번 봄에는 벚꽃나무가 상사화가 되는 것을 꼭 지켜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전 세계는 올해 봄꽃의 축제를 거부하고 있다. 야속하게도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꽃이 지기만을 기다리는 사회적 거리를 두는 삶이 돼버렸다. 애석하지만 올해는 저 봄꽃들을 그렇게 보내야만 한다. 벚꽃나무에 싹이 나올 때는 우리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 하기를, 그리고 빠른 시일 내 코로나19의 종말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꽃이었다가, 눈으로 변했다가, 푸른 나뭇잎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우리에게 봄날의 아름다움을 선물해 준 그 꽃의 이름은 '벗꽃'이 아니라 '벚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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