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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즐기고 거실로 나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에 비춰 아늑했다. 건너편 산은 온통 연둣빛의 향연이었다. 모르는 사이 봄은 이미 지척에 와 있었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옆 동에 사는 30년 지기가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난들 왜 안 가고 싶겠는가? 동요가 일었지만 "조금 참고 다음으로 미루자" 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계가 숨을 죽인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우리는 이 거대한 이슈 앞에 침입자를 막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략적인 청소를 끝내고 찻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윽한 향이 몸속 온기를 따고 스며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간판 프로그램 <아침마당>이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잊지 못할 지난 이야기'라는 주제로 출연자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소한 오해가 빚은 고부간의 갈등을 비롯해 부부, 자식, 친구 사이의 각양각색 스토리들이 꼭 나를 대변하는 거 같아 빨려 들어간다. 그러구러 한나절이 후딱 지나가고 있다. 

아침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도 고프지 않고 오히려 속이 편안하고 가볍다. 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가져 본 게 언제였던가? 쉼 없이 내달려 온 일상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라는 계시인 거 같아 사뭇 엄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의 내 일과는 치열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고 저녁 시간에는 불교대학 수업과 문학 동인회 활동, 또 취미 운동인 탁구까지 요일별로 짜여 있어 동분서주 경황이 없었다. 주말은 주말대로 갖가지 행사 참여에다가 봉사활동까지 하느라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따라 주었고 자기계발에 충실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집은 그저 하숙생이 머물렀다가는 거처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한순간에 멈춰 섰다. 실로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직장은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불교 대학과 문학회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주민센터에서 시행하던 탁구 교실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오랜 습관 몸에 밴 리듬이 깨지니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았다. 일찍 출근하지 않아 늦잠의 여유를 누리기는 해도 흐트러진 꼴이 말이 아니었다. 퇴근 후 총총 행여 지각할세라 동동걸음치던 불교 대학과 문학회 수업도 긴장감이 없으니 느슨해졌다. 동료 없이 혼자 받는 동영상 강좌는 집중이 잘 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장기전이 될 수도 있으니 상황에 맞게 대비를 해야 했다. 책상에 앉아 현장처럼 실감나게 하러 바싹 다가앉으니 비로소 능률이 올랐다. 일일 소정의 과정을 끝내고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고 바깥나들이에 나섰다. 두어 달 전에 아파트 단지 앞을 흐르는 하천을 정비하면서 둘레길을 잘 조성해 놓아 운동을 겸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요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필수품 마스크는 물론이고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갖춰 쓰니 노출이 되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혼자인 게 좋아 오랜만에 찾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초록 향기 품은 봄바람은 싱그러웠다. 겨우내 잠자던 대지가 꿈틀대며 발끝을 간질였다. 하천 모퉁이를 돌아 한 뙈기의 밭과 인접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구수한 흙 기운이 훅하니 스치니 아련한 고향의 냄새가 그립다.

불현듯 프랑스 철학자 쌍소 교수의 베스트셀러 <슬로우라이프 실천법>이 떠 올랐다. '한가로이 거닐 것' '즐거운 몽상에 빠져 볼 것' '고향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거나 추억이 새겨진 나만의 장소를 만들 것' 등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사는 의미'를 깨우쳐 현실을 돌아보는 여유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이것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소소한 일상이 벅차고 기뻤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한 걸음 멈추어 주위를 살펴보라고 경종을 울리는지 모른다. 내게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간단없이 이어지는 삶의 여정에 선명한 쉼표 하나를 찍어주었다. 텔레비전 뉴스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더 강력하게 2주 연장한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슬로건처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겠다. 제아무리 날뛰는 코로나19도 우리의 철벽 방어에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 그러면 나의 일상도 본래 위치로 돌아올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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