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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역병으로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이 인간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일까지로 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연장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과 상반된 기현상으로 대중과의 만남을 생명으로 하고 있는 예술인의 활동이 빛이 없는 터널에 들어선 느낌이다.

커피점 등 일부에서 이뤄지던 '드라이버 스루'라는 단어가 이제는 모든 부문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사회활동에서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갈등도 만나서 풀어야 한다는데 아예 만남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코로나19 방지대책이니 큰일이다. 특히 문제는 참담한 시련의 계절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데 있다. 창살 없는 감옥, 사람이 울타리 없이 집안에만 갇혀 있다는 것은 공포다.

터널의 중간쯤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순간에 죽음이라는 공포를 느꼈던 적이 있었다. 십 수 년 전쯤 진달래가 피던 이맘때다. 경주 단석산 산행 후 처음 올랐던 신선사 아래 저수지 방향을 놓치고 건천 방내리로 하산했다. 시작점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고민하던 중 눈앞에 공사 중인 경부고속철 터널이 있었고 이 터널만 지나면 그곳이 처음 올랐던 저수지 방향일 것 같았다.

터널은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성큼 터널로 들어섰다. 터널 가운데쯤이라고 느꼈을 때 작은 무서움이 뭉쳐져서 바윗덩이 같은 공포로 엄습해왔다. 전등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가 됐다. 눈을 뜨고 걷는지 눈을 감고 걷는지도 알 수 없는, 절대적 어둠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공포감을 떨치지 위해 흘러간 노래도 부르고 가끔은 고함도 질렀다. 위기 상황에서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꼭 이 터널을 벗어나 살아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다.

정신을 차리고 한걸음씩을 옮길 때, 그리고 터널 입구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평소 그냥 그러려니 했던 찬란한 햇빛, 상쾌한 공기도 너무 소중한 것이었음을 새삼 절감했었다. 견디기 어렵지만 비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듯이 희망가를 부르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역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일상의 보편적 삶이 대부분 정지돼 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등 비대면 사회활동이 확대되면서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을 위한 어떤 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개강했어야 하는 울산시민문예대학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될 때까지 개강을 잠정 연기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 진정이 되지 않을 경우 후반기 활동 역시 큰 지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삶과 분리할 수 없다. 그중에서 문학은 예술 활동의 시작점이다. 전쟁터에도 예술 활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특히 문인들은 종군기자라는 신분으로 활동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어두운 터널 같은 불안감으로 떨게 한다. 이 위기에서도 천만다행인 것은 울산문협회원들이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울산문학 봄호를 최근 냈다. 당초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문학지가 발간됐다는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이들 문인 중 상당수가 방과 후 학습 등의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이 학교 개학 연기 등으로 생활에 타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울산문협에도 시시각각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울산문학에 유일하게 광고를 하던 기업이 불황을 이유로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 연간 기백만원 지원도 할 수 없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기존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기관이나 단체도 가장 먼저 문화와 예술, 즉 이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업계획심사에서 탈락시키고 있으니 더더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가 최근 예술인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있어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중소상공인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처럼 울산문화와 예술이 꽃 필 수 있도록 예술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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