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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안달이 났다. 대한민국의 4·15 총선이 끝나자 청와대로 직통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청와대의 입, 강민석 대변인은 "트럼프의 요청으로" 한미 정상 통화가 이뤄졌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누가 먼저 요청했는지 두루뭉술하던 과거와는 확 달라졌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하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은 최상의 모범이 됐다"고 평가했다는게 청와대 브리핑의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축하에 대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크게 감소하는 등 사정이 호전된 것이 총선 승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사실 트럼프가 듣고 싶은 것은 문 대통령의 이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총선 승리의 방법론을 문 대통령에게 족집게 과외라도 받고 싶었던게 이번 통화의 목적이었지 싶다.  

총선이 끝나자 정치권이 또다시 요란하다. 승리에 취한 여당은 여당대로 표정관리하는 안면근육이 실룩거리다 말폭탄이 터져 나오고 패배한 쪽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으로 짜증 나는 곡소리가 요란하다. 먼저 구설에 오른 쪽은 여권이다. 대표적인 친노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정란 시인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는 독립해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라며 "귀하들의 주인나라 일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 이름)의 조국 일본이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총선을 평가하며 대구시민들을 조롱했다. 악랄하기까지한 발언이 문제가 되자 김씨는 자신의 글을 스스로 삭제하고 "제 발언에 지나친 점이 있었다. 정중하게 사과한다. 대구시민 전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 발 뺐다. 늘 이런 식이다. 퍼질러지게 조롱하고 욕지거리를 뱉었다가 문제가 되면 전달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본의가 와전됐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야비한 말장난이다. 조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인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이 서울 강남갑에 깃발을 꽂자 친문인사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해 '내래미안' '인민이 편한세상' '푸르디요' '력삼력' 등 태 당선인과 강남 지역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자 진보논객 진중권이 일침을 날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서울 강남을 태구민(태영호) 통합당 당선인, 대구시민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해 "앞으로 친숙한 풍경이 될 것"이라며 "태구민을 향한 친문들의 혐오 캠페인, 대구시민을 겨냥한 김정란의 혐오 발언. 스산한 광경이다"고 적었다. 진중권의 지적은 곧 현실화될 180석의 힘을 이야기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폭주기관차가 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조롱이 명사가 되고 비아냥이 주어가 되는 일상의 문법질서 파괴가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경고다.

문제는 염치다. 무염다적(無廉多敵)이라고 했다. 사람이 염치가 없으면 적을 많이 만들게 된다는 말은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 구절일지 모른다. 누가 더 염치가 없는지 염치총량의 무게와 정치적 승리가 비례하는 이상한 집단이 정치판이다. 홍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창녕에서 양산으로 다시 대구까지 이어진 한 달여 동안의 낭인생활 끝에 금배지를 달았다. 장하다 홍준표, 훌륭하다 홍준표라는 환호성을 듣고 싶겠지만 천만에다. 부끄럽다. 4만여 표를 얻어 5선 의원에 등극했으니 가문의 영광이겠지만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앞날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러운 장면이다. 깃발만 꽂으면 되는 지역구를 찾아다니다가 애송이 정치초년병을 누르고 당선된 그가 당선 일성으로 뱉은 말은 통합당 지도부 총사퇴였다.   

홍준표 당선인은 총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표는 책임지고 사퇴했는데 낙선한 사람들이 권한대행 운운하면서 당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정치 코미디 같다"며 "심판을 받은 당지도부가 비대위를 구성하고 총사퇴하라"고 밝혔다.  승리한 장수의 목젖이 파르르 떨리는듯하지만 사실은 그의 이런 발언은 울림이 없다. 낙선한 김용태가 즉각 말을 받았다. 김 의원은 홍 전 대표를 겨냥해 "홍 전 대표가 선거 다음 날 '노래방 기계도 가져와 춤을 추려 했다'고 하고 바로 대선 얘기까지 했다"며 "부디 기뻐하는 것은 대구 지역구 안에서 그쳐달라. 총선에서 통합당은 국민에게 사망 선고에 준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은 초상집"이라고 썼다.

이 말에는 칼이 숨었다. 홍 전 대표의 구설을 겨냥한 일침이다. 홍 전대표는 당선과 함께 가진 인사에서 "오늘은 자축공연하며 노래도 한 대여섯 곡 부르고, 노래방 기계도 가져와 대학생들하고 춤도 추려했는데 보좌관이 오늘 세월호 6주기라 좌파 언론에 도배하게 된다고 하더라"며 "세월호 특징은 학생들이 배 타고 수학여행 가다 침몰한 사고다. 그때 선장이 애들 나오지 말라고 해서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이 너무 많아졌다"며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 마라, 선박안전사고 재발방지 조치만 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근데 아직도 정치에 이용하려는 극히 일부 정치인들은 참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해난사고가 맞다. 하지만 이 사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이름만 바꾸다 폭망했다. 그런 당의 대표까지 지낸 자의 현실 인식이 이 정도니 미래통합당은 대한민국 보수정당이라는 이름을 떼는 게 옳다. 세월호가 해난사고라 하더라도, 서해 페리호 만큼 비극적인 사고였다 하더라도 엄연히 내용이 다르다.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대처와 안이한 인식으로 생목숨을 잃은 인재가 세월호의 핵심이다. 그래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했다. 그 바탕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조속하게 이뤄졌다면 당시 야당의 정치공세를 먼저 차단하고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책임을 피하려 하고 입조심으로 세월을 보내다 뒤늦게 선수를 뺏기자 비난하고 문제 삼고 어깃장을 놓는 것은 패자의 패악질에 불과하다. 철저하게 반성하고 철저하게 책임지는 자세부터 가졌어야 했는데 그 골든타임을 놓치고 주도권을 야당에 넘기다 스스로 야당이 된 자들이 지금의 통합당이다. 그래놓고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인다. 정치에 이용하게 만든 자들이 누군지 고민하지 않은 텅 빈 대가리들의 염치 모르는 질러보기다. 

이번 총선은 바로 여기서 정리가 된다. 부끄러움의 무게다. 세월호를 육지에 올리면서 잔인한 4월을 생생하게 재생시킨 민주당 정부는 5월 대선에서 정권을 잡았다. 준비 안 된 정부가 완장을 차면서 대한민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우리경제는 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졌다. 안보는 위기의 일상화가 됐고 정치는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조국 사태였다. 공정과 정의를 외친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까발려졌고 지지세력조차 일부는 등을 돌렸다. 바로 그 장면에서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터졌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바이러스의 파장은 컸다. 사스와 메르스의 학습효과가 빛을 발하면서 위기는 반전됐다. 천운이다.

여당의 염치가 민생을 짓누를 시점, 바이러스는 국민들의 관심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야당은 시종일관 청와대와 민주당을 향해 삿대질만 했다. 코로나19의 대처를 포장하지 마라 이 모든 성과는 과거 정부의 준비 때문이다. 의료진의 희생을 자신들의 성과로 뒤집기만 하는 거짓말 정부라며 목젖을 세웠다. 비난은 솔깃했지만 내용이 없다. 매일같이 찍히는 확진자 숫자와 완치자 숫자, 그리고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미국과 유럽의 환자 숫자는 극명하게 갈렸고 염치의 무게는 저울을 떠났다. 바로 편법으로 얼룩진 거대 여야 정당의 낯부끄러운 싸움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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