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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 콩깍지 - 부모

                                                                                                           박장희

콩깍지는 수확하고 나면 버려져
아궁이에 불을 떼고 마는 것이지마는
씨앗이요 열매인 콩 알맹이는 콩깍지가 없으면
애초에 생겨날 수도 없고 클 수도 없고
익을 수도 거둘 수도 없는 것이다.
깍지는 허울이요, 외피요, 형식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해야만 그 곳에서 실한 콩을 살찌울 수 있는 것이다.
벌레 먹고 썩은 깍지가 어떻게 탐스러운 콩을 보호할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하물며 아예 생겨나지도 않은
혹은 없는 깍지라면 콩 또한 어디에 꼬투리를 기대고 태반을 삼아?
눈(芽) 붙일 자리조차 아예 없는 것이지*

* 최명희 '혼불' 4 부분

△박장희: 1999년 '문예사조' 등단, 2017년 '시와 사학' 재등단, 시집 '폭포에는 신화가 있네' '황금주전자' '그림자 당신', 산문집 '다시페이트와 서푼앓이' 사르트르문학대상, 울산예술제 울산광역시장상, 울산문학상, 울산詩文學 본상 외 다수.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읍내에 있는 중학교 통학 길은 농로를 따라 십리 길을 걸어야 했다. 여름이 시작 할 때쯤 들판에 있는 어린 완두콩은 배고픈 하굣길에 간식이었다. 비릿한 그 생 완두콩이 영글때까지 깍지 역할은 생각지도 못한 그때. 비오는 날 차비가 없어 비닐우산 하나 의지하고 십리 길을 걸어온 자식에게 따뜻한 물 한 대접 내밀며 당신의 가난이 미안했던 엄마, 혹시라도 젖은 옷으로 인해 감기라도 걸리까봐 애태운 그 마음을 자식은 몰랐던 것이다. 부모는 콩이 다 익을 때까지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깍지임을 시인의 묵직한 강조에 다시 숙연해진다. 콩을 살찌울 수 있는 콩깍지의 몸가짐도 시인은 잊지 않고 있어 짧은 시 속에 큰 울림을 내려놓는다.


오래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혼자 5월 초록 아래서 자식 기다리실 엄마, 외로운 시간은 슬픔보다 아픔으로 걸어온다. 늘 후회는 회한이 되기 마련이다. '콩깍지가 없다면 애초에 생겨날 수도 클 수도 없는' 그러나 자식들은 잊고 살기 일쑤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좋은 직장에 입사 했을 때, 좋은 배필을 만났을 때 모두 자신의 잘남 덕으로 된 줄 안다. 부모의 깊은 그늘 아래서 더위도 피하고 추위도 이길 수 있었음인데.


곧 완두콩 꽃 하얗게 필 것이다. 꽃 진 자리 찾아 콩깍지 울타리 되어 알맹이 단단하게 키울 것이고 시인이 걱정하는 탐스런 콩 보호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짝사랑 또한 그 어떤 시대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눈(芽) 붙일 자리' 만들어 주신 엄마 뵈러 카네이션 꽃을 사러가야겠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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