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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내부

                                                                                  최금진

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는

충혈된 눈 속에서
쪼그리고 우는 여자를 꺼내놓는다

겹겹의 마음을 허벅지처럼 드러내놓고
여자는 가늘게 흔들린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

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

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최금진 시인: 충북 제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 등단.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08년 제1회 오장환문학상. 시집 '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담벼락에서, 골목에서, 강변에서, 공원에서 불쑥불쑥 가로막고 눈을 찔러온다. 온 천지가 요염함으로 넘실댄다. 간만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놓을 줄을 모른다. 휘~릭 바람이 불때마다 두 손으로 허벅지를 누르는 먼로의 치맛단이 된다. 치명적이게 붉은 겹겹의 입술에 까만 점이 도드라진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에게 비너스의 정사장면을 침묵하게 하는 대가로 바친 뇌물이 최초의 장미가 되었다는 전설. 큐피드의 피가 흰 장미에 뿌려져 붉은 장미가 생겼다던가. 뭐 어떻던 사랑을 관할하는 신의 능력이 그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결혼 횟수만큼 장미를 선물 하는 친구의 남편이 있다. 사실은 꽃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은 회를 거듭할수록 다발이 불어나서 한 해에 백송이 장미를 받은 이벤트의 날도 벌써 저 멀리 달아났다. 앞으로는 한 회에 백송이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물의 에티켓으로 미혼은 봉긋한 장미를, 기혼은 활짝 핀 것으로 한다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파파할아버지가 되어 수레 가득 꽃에 파묻혀 이벤트를 즐기는 상상만으로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이라면. 


여자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꽃에 웬 사내가 몇 겹의 꽃잎으로 충혈 된 눈빛을 하고 있다니, 눈을 뗄 수가 없다. 그의 내부에서 벌레들이 삶을 갉아 먹었을 것이다. 갉아 먹히는데 절름발이도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 사내의 눈빛은 꽃잎보다 몇 배속 깊은 터널일 것이다. 허수경시인의 '폐병쟁이 내 사내'가 겹친다. 눈매만은 미친 듯 타 오르는 사내,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 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고아 멕이고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여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나게 데운 잎차 물같이 눕히고 싶다는 사내를. 이 계절이 끝날 쯤 절름발이 사내의 눈빛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시의 깊이를 응시한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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