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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나라다. 누가봐도 잘못된 일인데 아니란다. 구태세력이 친일 프레임을 씌워 단두대에 올리려고 모함한단다. 정의기억연대 이야기다. 정식명칭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다. 지난 1990년 출범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16년 출범한 정의기억재단이 지난 2018년 통합해 만든 단체다. 주요활동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개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지원, 생존자 복지지원사업, 연구조사교육사업, 전시성폭력재발방지사업, 기림 및 장학사업 등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리는 수요시위나 평화의 소녀상 건립, 연구사업 등등을 주도하는 단체이기에 예산소요도 꽤 벅찼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누구도 나서지 못한 일을 지난 30년 동안 해온 공은 누가 뭐라 해도 크다.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드러내 놓은 정의기억과 관련한 업적이 아니다. 집회 때마다 목청을 높인 할머니, 90을 넘기고도 쩌렁쩌렁 울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또 다른 한이다. 아무도 몰랐다. 정의와 기억이라는 이름의 무겁고 비장한 단체 이름 뒤에 어떤 비리와 부정이 있었는지는 정말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던 그들의 추한 뒤태를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가 까발렸다. 이용수 할머니다.    

92년의 삶이 한과 피눈물로 점철된 이용수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대구 모처에서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할 말을 했고, 이제 더 이상 이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전 정의연 이사장)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는 게 옳은 거지, 양심도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이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전 일본이 10억 엔을 내기로 한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은 이에 대해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 할머니는 그간의 위안부 피해자 인권 활동과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열세 살 적 일까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름을 내걸고 모금했던 많은 경비의 회계 의혹도 제기했다. 이 할머니의 이런 주장에 대해 윤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약간의 회계 착오는 있었지만 부정은 없었고 이 할머니의 주장은 기억의 문제"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검찰이 회계 부정 논란이 제기된 정의연과 윤 당선자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윤 당선자 관련 고발사건을 형사4부(부장 최지석)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정거래·경제범죄 전담부인 형사4부에 정의연 사건을 배당한 것은 주요 혐의가 후원금의 사용과 회계 부정에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윤 당선자가 위안부 할머니들 앞으로 모은 후원금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윤 당선자는 시민단체들로부터 횡령과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정의연은 지난 2018년 '기부 금품 모집·지출 명세서'에 22억7,300만원의 기부금 수익을 다음 해로 넘긴다고 기록해놓고, 정작 2019년 서류에는 이월 수익금을 0원으로 기재했다. 또 기부금 수혜자를 공교롭게도 99명, 999명 등으로 일관되게 기재했다. 정의연은 단순 기재 오류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의 발단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에 있다. 윤 당선자나 정의연, 더불어민주당과 여권의 이야기처럼 친일세력과 보수언론의 결합상품으로 탄생한 친일 패키지가 이번 사건의 본질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아니다. 이 사건은 이용수 할머니의 울분이 터져 나오면서 시작됐고 그 단초는 이미 지난 2004년에도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 이전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위안부로 인정받은 고(故) 심미자 할머니가 이미 16년 전인 2004년 위안부 성금의 부정 사용을 지적했다. 아시아여성기금과 관련 정대협 측과 갈등을 빚던 심 할머니는 "지금까지 당신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답시고 전국 각처에서 손을 벌려 거둬들인 성금이나 모금액은 전부 얼마이고,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 사용했느냐"며 횡령 의혹을 제기하는 성명서를 냈다. 당시 정대협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아들인다면 공창에 들어간 셈"이라거나 "기금을 받아들인다면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우리 스스로 또다시 돈에 팔린 노예가 되는 것"이라며 심 할머니를 공격했다. 자신들을 공격하면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반일단체와 정치권 뒤로 숨어버리는 속성은 참으로 절묘하게 닮았다. 

여권 인사들 가운데 비리나 도덕적 결함,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순간  달려가는 곳이 뉴스공장이다. 이번에도 윤 당선자는 김어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 당선자는 박원순이 뒷배로 있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하소연을 쏟아냈다. 윤 씨는 자신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는 인사들은) "할머니와 활동가를 분열시키려 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 30년의 목소리를 죽이려고 하고, 제 목소리에 제약을 가하려고 하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또 회계 처리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사무적 오류"라고 했다. 특히 기부금 명단 공개와 관련, 김어준 씨가 "(기부자 중 이름 공개되는걸) 원하지 않는 분이 많아 못 내놓는다"고 말하자 윤 당선자는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양산에 둥지를 튼 김두관 의원이 거들었다. 김 의원은 "기부금의 진실이 아니라 위안부의 소멸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며 보수 진영의 공격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역시 이번 사건을 친일 프레임으로 엮어 적폐 청산의 한 줄기로 찍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여기에 버럭 목청을 높인 사람은 보수 진영에서 유일하게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었다. 하 의원은 "언제부터 회계투명성 문제가 친일이 됐나"라며 김 의원의 발언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미향 당선자가 이사장으로 있던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투명성은 행안부와 국세청조차 문제가 있다며 추가 자료제출을 요구했다"며 "언제부터 회계 투명성 문제가 친일이 됐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김두관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회계 재공시를 명령한 국세청과 기부금 모금 사용내역 제출하라고 한 행안부조차 친일세력이 되는 것"이라면서 "그게 공공비정부기구(NGO) 감독하는 행안부장관 출신이 할 소리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행정안전부는 NGO에 대한 지원금도 집행하면서 NGO에 대한 회계 감독을 할 수 있는 정부 조직으로, 행안부의 회계 투명성 지적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김 의원은 국민과 언론의 정당한 요구조차 친일세력의 공세로 매도하고 있다. 김 의원이야말로 친일 몰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이 정도 상황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구도로 흘러가는 정의연의 기부금 부정의혹은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지정기탁한 기부금이 윤 당선인의 사적 수단으로 변질된 의혹도 제기됐다. 정대협은 지난 2012년 현대중공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 기부한 10억원 중 7억5,000만원으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의 토지 242평과 건물을 매입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대협은 이 쉼터를 본래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윤 당선인의 부친에 맡겨 관리하다 최근 반값 수준인 4억2,000만원에 별도로 팔았다. 이 시설 주변에 사는 마을 주민들의 진술을 보면 이곳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술판을 벌였던 곳이라 기억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이런 따위의 팩트조차 어떤 친일 프레임으로 뒤집어 공격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억울할 수도 있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밝히면 되는 일이다. 국민들은 정의연이 어쩌다 정치와 결합하고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단체가 됐는지 정말 궁금해하고 있다. 스스로 묻고 국민에게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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