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보수(再造保守) - 완전히 비워야 다시 기회가 온다
재조보수(再造保守) - 완전히 비워야 다시 기회가 온다
  • 울산신문
  • 2020.05.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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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사자독해]

임진년 조일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조선의 산하와 물산은 깡그리 바닥났다. 모든 이들이 미래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백성들은 당장의 곡기를 위해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때 실의에 빠진 서애 류성룡에게 이순신이 적어 올린 글귀라 알려진 사자성어가 '재조산하(再造山河)' 네 글자다. 하지만 이 말은 가짜뉴스다. 실제로 이 네 글자는 선조실록 26년(1593) 윤십일월 16일 자 기사에 등장한다. 명나라 신종의 사신이 귀국하면서 준 외교 문서의 일종인 차부(箚付)에 바로 재조산하가 나온다. 명에서는 당시 서애 류성룡의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하면서 "(조선) 왕은 참으로 모든 국정을 그(류성룡)에게 전임시키면, 그는 반드시… 어려움을 물리치고 어지러움을 진정하여 사직을 안정시킬 것이며, 산하(山河)를 재조(再造)할 것입니다"고 적었다.

여기서 재조는 바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함의를 담았다. 집권 4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을 위해 펼쳐 든 밑그림의 첫 글귀도 재조산하였다. 새롭게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바꾸려면 있는 것을 없애거나 무시해야 한다. 비우고 없애는 일이 바탕이라는 말이다. 당장 출발선에서 기존에 담았던 그릇을 비우거나 깨고 새로움을 채우는 일은 반발이 엄청나다. 

그래서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가진 자는 보수, 가지지 못한 자는 진보라는 이분법이 시작됐다. 진보와 보수의 명확한 구분선을 갖기 전에 우리는 이런 관념에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다. 

정치를 얘기를 할 때 보수는 반개혁적이고,구태의연하며 과거지향적이라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보수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보수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신중하게 변화를 받아들이며 미래의 개혁을 지향하는 이념이다. 바꿔야 할 것은 확실히 바꾸고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게 지켜내는 것이 보수의 가치다. 

반대로 진보에 대한 오해도 퍼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급진적이고 개혁적이며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진보는 그 출발이 인류사와 무관하지 않다. 더 나은 삶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둔 인류의 지향점이 이념으로 굳어졌다. 더 나은 삶은 결국 인류사에 새로운 동력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문명의 변화는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문제는 19세기 중엽 이후 산업혁명과 그 숱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진보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부각시켰고 이른바 좌파 이론, 공산주의 사회질서가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됐다. 바로 헤겔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변증법적인 사고가 진보를 대체하는 이상 현상으로 변질됐고 결국 진보는 좌파 이데올로기로 인식되는 편견으로 굳어졌다. 

그 대표적인 정치 실험대가 영국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끊임없는 대결구도로 정치역사를 써내려온 영국은 한 때 진보정치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 정치세력이 지난 1988년 깃발을 내린 자유당이다. 영국 자유당은 변화와 진보,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선거권 확대, 상원의 개혁 등을 통해 영국 역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겼고 100년 전에 최저임금제와 노령연금제를 도입했다. 당시 보수의 아이콘은 토리파였다. 토리파는 수입 농산물에 대한 무거운 관세 부과하며 농산물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이유는 하나, 토리파의 뒷배인 지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지점을 휘그파가 파고들었다. 곡물법 폐지였다. 노동자와 상인들의 곡물법 폐지 목소리를 정치에 담아 선전선동에 나섰다. 전 국민의 최대관심사는 곧바로 정치개혁 목소리로 이어졌고 그 중심에 곡물법 폐지가 이슈로 부각됐다. 결국 이 문제는 정계 개편으로 이어졌다. 폐지를 지지하는 휘그파를 중심으로 자유당이 결성됐고 반대하는 상당수 토리파는 보수당으로 모였다. 

그런 자유당도 100년을 넘기지 못했다. 변화에 민감한 진보의 촉수가 무뎌졌고 무수한 선거의 승리 기록은 달콤한 권력욕에 젖게 했다. 영국 자유당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세 차례의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당시 자유당 인사들은 100년 집권을 이야기하며 언제나 국민은 자유당 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1924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40석짜리 미니 정당으로 쪼그라졌다. 반면 보수당은 419석, 노동당은 151석을 얻었다. 보수당-노동당의 양당 구도 아래 자유당은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자유당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8년 간판을 내렸다. 

미래가 없는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미래통합당이 결국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로 당을 정비했다. 내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까지로 비대위 임기를 확정했다. 신탁통치니 구태복귀니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일단은 김종인에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하지만 당내의 잡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통합당 21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잘 드러났다. 지도체제를 정하는 투표에 앞서 진행한 토론에서 재선인 성일종 의원과 3선인 윤재옥 의원은 "혁신과 강력한 쇄신을 위해 '김종인 비대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4선 이명수 의원과 3선 조해진 당선자는 '우리 힘으로 당을 이끌자'는 자강론을 강조했다. 토론 끝에 '내년 4월까지 김종인 비대위를 운영한다'는 내용으로 찬반 표결에 들어갔고, 다수가 '김종인 비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딱 그 지점까지가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한계다.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총선 참패의 원인을 모른다. 김세연 같은 차세대 그룹이 간간히 목젖을 세우며 지적했지만 그때 뿐이다. 아직도 방향을 모른 채 우왕좌왕하며 오래된 옛이야기로 날을 지새는 정당이 미래통합당이다. 

김종인이 누구인가. 박근혜와 손을 잡고 대통령을 만들었다가 밥그릇이 작다며 상을 걷어찬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통으로 중도통합의 부댓자루를 짊어지고 진보에 들어가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장자방이다. 그리곤 이번에도 그릇이 작고 여물이 저렴하다며 밥그릇을 깨고 돌아선 인물이다. 그런 그를 미래통합당의 선대본부장에 앉힌 이가 바로 황교안 아닌가. 황교안은 누군가. 박근혜 탄핵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때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한 국가의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구태의 상징인 그가 총선의 정점에서 보수 정치의 깃발을 흔들었다.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 한 사람의 인물이 바로 홍준표다. 초라하지만 금빛 배지 하나를 위안으로 삼는 저렴한 정치인이 돼버린 홍준표는 이제 더이상 보수의 대표주자가 아니다. 황교안과 척을 지고 김종인을 비난하던 왕성한 목청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 아니, 간간히 떠들어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정치권의 변방으로 쫓겨난 셈이다.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문제는 홍준표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 보수가 바로 그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모른다. 세상의 관심 밖으로 쫓겨난 신세인 줄 모르는 보수가 여전히 100석 남짓의 정치적 기득권을 가졌다고 착각한다. 바로 여기서 김종인 대안이 나왔다. 아직 100석의 뒷배 가 있으니 여기서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계산법이다. 그 이면에는 아직 돌변하지 않은 대한민국 샤이보수를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숨어 있는 보수들이 이 혹독한 시절이 지나고 진보의 민낯이 드러나면 보수 재건의 깃발 아래 모여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바보들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샤이보수는 없다. 어쩌면 샤이보수가 아니라 사이사이에 가끔 보수를 추억하는 이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부활할 정도의 보수는 지난 총선에서 모두 궤멸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현재의 정치는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이 무너졌다고 이야기한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보수와 절대우월주의에 빠져 내로남불을 모의하는 진보가 우리 정치의 주류인냥  뻐기는 꼴이다. 

누가 이 부분을 먼저 인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선을 찾느냐가 대한민국 미래정치의 좌표다. 재조보수도 바로 여기가 출발선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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