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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만

발 달린 벌을 본 적 있는가
벌에게는 날개가 발이다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
꽃에게 가고 있다
뱀은 몸이 날개고
식물은 씨앗이 발이다
같은 길을 다르게 걸을 뿐
지상을 여행하는 걸음걸이는 같다
걸어다니든 기어다니든
생의 몸짓은 질기다
먼저 갈 수도 뒤처질 수도 없는
한 걸음씩만 내딛는 길에서
발이 아니면 조금도 다가갈 수 없는
몸을 길이게 하는 발
새는 허공을 밟고
나는 땅을 밟는다는 것뿐
질기게 걸어야 하는 것도 같다
질기게 울어야 하는 꽃도

△권기만: 1959년 경북 봉화 출생. 2012년 '시산맥' 등단. 시집 '발 달린 벌'. 최치원신인문학상, 월명문학상, 울산문학 작품상 수상.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발'은 울림소리로 끝난다. 그래서인지 발이란 말의 동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글자의 끝은 느낌이 묵직하고 정적이다. 우리가 발을 움직여 한 걸음 내디딜 때 비로소 한 세상이 열리고 또 닫힌다. 매순간 생을 열어야하는 것도 발이요 닫아야 하는 것도 발이다. 열었다 닫았다 하는 행위의 연속이 '길'인 것이다. 그 길은 "먼저 갈 수도 뒤처질 수도 없는/ 한 걸음씩만 내딛는 길"이다. 그 길에서는 "발이 아니면 조금도 다가갈 수 없는" 몸과 "몸이 길이게" 하는 발이 있을 뿐이다. 몇 해 전 만난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은 길고 앙상한 두 다리에 비해 크고 두툼한 발이 인상적이었다. 이 시를 읽으니 그 발이 생각난다. 깡마른 몸을 실어 성큼 내딛던 오른 발과 다음 걸음을 위해 발꿈치를 세우던 왼발이 눈에 선하다. 인간의 고독을 잘 형상화했다는 그 조각상은 이 순간에도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을 것이다. 이 시의 표현을 빌자면 "질기게" 걷고 있을 것이다. 질기게 울고 있을 것이다.


벌의 발은 날개이고, 뱀은 몸이 발이고, 식물은 씨앗이 발이라니, 발상이 정말 재미있고 활달하다. 모두 자리를 지키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같은 길을 다르게 걸을 뿐이라는 시인의 사유가 환하게 스며든다. 그런데 그 공감이 왜 이리 짠하고 아린가. 기어서 다니든 걸어서 다니든 날아서 다니든 모두가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발일뿐인데. 그 숙명 같은 걸음걸이가 애잔하고 시리다. 산더미만 한 짐을 지고 산에서 집으로 귀가하시던 아버지의 발이 보인다. 발끝만 보고 걸어야 했을 한걸음 한걸음의 당신의 길이고 생이었던 것인데. 시에서는 새가 밟는 허공과 시인이 밟는 땅바닥을 동일한 생의 무게로 읽는다. 벌에게, 뱀에게 새에게 보낸 시인의 따뜻한 눈길은 모두 연민이 된다. 그 연민에서는 무언가 든든한 뒷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질기게 걸어야하는 것도 같다"고 말하는 시인의 진술이 툭 하고 던져주는 맛은 왜 이리 시린가. 주말에 딸아이에게 다녀오면서 새벽기차를 탔다. 아직 잠 속에 있는 딸아이의 서랍에 용돈 조금과 메모 한 장을 넣어두고 왔다. 서랍 속에 넣어 둔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서랍의 발이다. 부지런히 둥근 발을 굴려서 딸아이에게 닿기를 기대한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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