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선에 머물다] 바람 부는 숲을 지나며
[詩선에 머물다] 바람 부는 숲을 지나며
  • 울산신문
  • 2020.06.0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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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숲을 지나며

                                                                                송은숙

바람이 일렁이는
녹음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여행길에 보았던 거대한 수족관을 생각한다

물거품 같은 햇살 튕겨내는 나뭇잎은
하얀 배를 보이며 유영하는
물고기 푸른 지느러미를 닮았다
바람 불 때마다 몸을 뒤척이는 비늘들의
은빛 찬란한 소란스러움

꿀통을 건드려 잉잉거리는 벌들을 쏟아놓듯

바람 부는 날 터질 듯 수런거리는 숲을 지나며
빽빽이 둘러선 나뭇가지 우듬지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활짝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송은숙: 대전 출생 2004년 '시사사'로 시 등단. 2017년 '시에'로 수필 등단 울산 작가상 수상. 시집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산문집 '골목은 둥글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고 바람은 더위를 밀치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되는 계절, 아무렇게나 펼쳐진 숲들의 수런거림에서 '거대한 수족관을 생각한다'라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들의 움직임이 고기떼들의 유영이라니, 이 또한 시인의 기발한 상상이 아닌가. '햇살 튕겨내는 나뭇잎' '은빛 찬란한 소란스러움' '터질 듯 수런거림' 이 날렵한 상상력이라니! 그리고 우듬지의 빽빽한 곳에 펄떡이는 고기들을 풀어놓을 생각을 하다니, 마치 푸른 하늘을 온통 자기 땅 인냥 휘젓고 다니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송은숙 시인의 여유를 보는 듯하다.

행간을 따라가면서 '수족관-푸른 지느러미-몸을 뒤척이는 비늘-펄떡이는 물고기'를 만나게 되는데 시인의 확장된 이미지를 통해 한 컷 한 컷이 연결되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따라서 녹음의 바다로 이끌어 가는 시인의 진행도 이채롭다. 특히 '꿀통을 건드려 잉잉거리는 벌들을 쏟아놓듯'을 한 행을 한 연으로 유지하면서 공감각적 심상으로 더욱 시를 돋보이게 한다.
모름지기 시인은 화가가 되기도 하고 음악가가 되기도 한다. 송은숙 시인이 펼쳐 놓은 녹음의 터널에서 잠시 상상에 빠져보자. 수런거리는 숲이 진정 무얼 원하고 있는지. 갑자기 태화로터리를 지나 와와 삼거리까지의 녹음 터널로 달려가고 싶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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